"한·미, 유례없는 곤란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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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미관계는 지금 유례없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가장 큰 문제는 괄목할 만한 민주주의 발전을 이룬 한국 젊은 세대들의 세계관이 미국의 세계관과 현저히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7 ~ 2000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스티븐 보즈워스(사진) 전 주한 미 대사는 2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매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국제정책 태평양협의회(PCIP) 초청 연설에서 "한.미동맹의 끈이 과거보다 매우 느슨해졌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보즈워스 전 대사는 "이 같은 현실은 한국의 현 정부 출범 이후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제반 현안에 대한 양국 간 이견의 골이 커지고 있는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현 집권세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제정신이 아니며(crazy), 매우 불안한(unbalanced) 인물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북한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며 "여기에서 한.미관계의 균열이 시작됐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 행정부는 북핵 문제 해법 중 하나로 김정일 정권의 교체도 염두에 뒀으나 한국 정부가 강력히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강연이 끝난 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한 감정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새 한.미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현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국의 지식층은 한국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양국이 다시 관점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지만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는 한국 정부의 기본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 경제원조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을 받는 방식으로 교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A지사=오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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