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식사회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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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 학계에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서양 이론 수입상'이다. 눈길 끄는 이론을 수입해 한 건 올리는 데만 급급할 뿐 소화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을 비꼰 표현이다. 해방 60년을 맞는 한국 지식사회의 자화상이다.

최근 인문사회학계 교수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 지식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양이론의 무비판적 수용'(37%)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당파성 및 폐쇄성'(11%), '권력비판 소홀 및 종속'(10%), '지나친 미국 편향성'(9%), '학문의 질적 발전 미숙'(8%) 등이 지적됐다.

KBS와 교수신문이 공동 조사한 이 설문은 KBS 1TV에서 26일(밤 10~11시)부터 4회에 걸쳐 방영할 '한국 지성사 시대를 움직인 생각들'에 포함됐다.

근대화론에서부터 종속이론과 마르크스주의를 거쳐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이론 수입상'이란 측면에서 보면 한국 지식사회에 좌우의 구분은 없다. 자료 조사와 진행을 맡은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교수는 "좌우를 막론하고 수입한 이론을 소화된 자기 목소리로 설명해 내지 못했다. 이는 학문이 상아탑 속에서 점차 암호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향후 지식사회의 과제로는 '주체적 이론 및 담론 개발' '현실과 이론 괴리 극복' '학문의 질적 발전' 등이 꼽혔다. '이론 수입상'이란 문제점이 '주체적 이론 개발'이란 향후 과제로 연결돼 나타난 것이다.

해방 이후 한국 지성사(知性史)의 흐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광주 민주화 항쟁''한국전쟁''유신''포스트모더니즘 확산'등이 선정됐다. 설문조사의 자문위원으로는 김명인(인하대).박명림(연세대 국제대학원).박태균(서울대).정태헌(고려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김호기 교수와 자문위원들이 설문과 별도로 조사한 결과는 한국 지성사 60년의 '편식증'을 보여준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의 교수(정치학.경제학.사회학과) 가운데 10명 중 8명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

구체적으로 보면 서울대의 교수진은 미국박사 84.5%, 국내박사 8.6%다. 연세대는 미국박사 85.6%, 국내박사 5.3%며, 고려대는 미국박사 80.5%, 국내박사 7.3%였다. 서강대는 미국박사 85.4%, 국내박사 4.9%, 성균관대는 미국박사 82%, 국내박사 2.6%였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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