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워가 일본에 뿌리내리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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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법정투쟁끝에 한국인에 대한 두터운 차별의 벽을 깨고 일본변호사자격을 따내 화제를 모았던 재일교포2세 김경득씨(34)가 『진짜 한국인이 돼야겠다』며 고국에 건너와 한국인 수업을 쌓고있다.
『일본에서 교포들의 권익을 위해 일을 하려면 나자신부터 한국냄새가 풍겨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만하며 자라온 김씨는 81년9월 귀국해 1년6개월여의 고국생활을하며 우리말을 익혀 혀짧은듯한 소리를 내지만 우리말이 유창하다.
김씨가 일본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은 지난76년10월. 네번째 도전에서 62대1의 경쟁을 뚫고 4백65명중 38위의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러나 2년간 수료를 마쳐야 법조계에 나갈 수 있는 사법연수소 입소가 거절됐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사법연수소에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 10명의 한국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었으나 모두 일본에의 귀화를 조건으로 사법연수소에 들어갈수 있었다.
김씨는 최고재판소에 장문의 청원서를 내고 위헌성을 주장했다.
「최고재판소로부터 국적변경을 강요당하고 있으나 내가 변호사가 되려는 것은 한국인차별해소를 꾀하기위함인데 귀화한다면 어떻게 재일동포의 신뢰를 얻을수있겠는가. 귀화할수 없다」는 것이 김씨의 청원서 요지였다.
재일한국인 사회와 일본법조계 지식인들의 들끓는 여론에 입어 김씨는 77년3월 한국인의 국적을지닌채 사법여수에 입소하게됐다.
김씨가 뚫은 이 관문은 재일교포2세들에 큰힘이돼 지금도 매년 2∼3명의 교포들이 「한국인」으로 일본법조계에 배출되고있다.
아버지 김석구씨(74)는 1927년 일본에 건너가 현재까지 와까야마에서 불고기집을 경영하고 있다.
김경득씨근 3남3녀중 2남. 동경대이공학부를 졸업한 동생 경웅씨(31)도 지난해 한국에 현재 과학기술원에 근무하고 있다.
김씨는 모국에 오자마자 연세대한국어학당에서 우리말 ·문법을 배운뒤 연세대 김주수교수의 친조 법관계 강의를 듣고있다. 이때 김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시고있는 여학생 손영난씨(26·이대대학원생)를 만나 지난1월 결혼했다.
앞으로 한국인수업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면 사할린교포송환문제, 재일한국인인권센터건립, 한일간 법조계 교류등을 통해 일본에서의 한국인 법적지위 개선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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