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질서지키자〃는 소리좀 그만했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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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심에서 멀리 띨어져 살고부터 시내 한번 나가기가 큰 나들이 처럼 힘겹다. 합승을 금지시킨다든가, 요금이 내린다든가 하는 교통정책의 변화도 즉각 피부에 와닿는다.
요금이 내리고 부터 급할 때 택시잡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어쩌다 쉽게 빈택시를 잡고들어 앉으면 마치 대운이라도 잡은 듯이 가슴이다 울렁 거린다. 그러다가 차가 강변도로 접어 들면서 모래를 싣은 대형트럭·유조차등을 아슬아슬하게 추월하면서 폭주를 시작하면 대운이 당장 무슨 액운으로 변할지몰라 새옹지마의 고사까지 떠올리며 전전긍긍하게된다.
이래 저래 전철을 애용하게 되는데, 어쩌다 출퇴근때에 맞춰 전동차를 타게되는 경우는 그혼잡이 지옥의 광경을 방불하게 해 교통지옥이란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님을 알겠다.
특히 신설동 정류장의 연결통로를 이용할때는 그많은 인파가, 그 급한 시간에 그 좁은 골목과 계단을 통과하면서 사고가 안나는게 오히려 신기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나는 평지에서도 걸핏하면 잘 넘어지는 좀 변변치 못한 체질이어서 나한사람이 넘어짐으로써 연쇄적으로 일어날 불상사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난다.
그러나 결코 밀고 밀리는 일없이 서둘거나 지체하는 일도 없이, 넘어질 만한 몸조차없이 움직이는 인파의 질서에 따르노라면 절로 편안해진다.
이럴 때 제발 마이크로 질서를 지키는 국민이 되라는등 문화민족은 질서를 지킨다는등 설교나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곳의 안전이 유지되었다는건 순전히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의 높은 질서의식때문이라는것쯤 출퇴근시간에 그곳을 한번만이라도 지나가 본 사람은 단번에 알게된다.
그만큼 높은 질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왜 마치 미개한 나라의 국민학교 1학년생한테나 해당될 것 같은 선교를 허구한날 들어야 하느냐말이다.
정말 설교를 들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 아니라 그곳을 그렇게 불편하게 설계한 쪽이 아닐까? 2호선만 완전개통되면 그곳에서 갈아타는 불편도 없어지게 될테니 당분간 좀 혼잡하더라도 참으라는 표지판까지 붙어 있지만 자그만큼 3년넘어 그런 위험스러운 혼잡이 계속되고 있다』 3년동안의 위험은 내다놓고도 그렇계 설계했다면 그야말로 얼마나 야만적인가. 상쾌해야할 아침에 듣는 주객이 전도된 설교는 크나큰 비애다.
설교를 좋아하기는 매스컴도 마찬가지인것같다.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주는 일은 접어두고 우선 설교부터 하려든다. 소위 심층취재라는 것일수록 편견이 심하고 결론이 조급하고, 설교가 장황하다.
너도 나도 우리가 지킬바, 갈바, 생각할바를 가르쳐 주려든다.
설교가 듣기 싫어 안듣고 안보려든다면 내 마음이 너무 비꼬인걸까? 그러나 요즘 그 흔한 설교덕에 딱하나 배운게있다. 아이들한테 왜 어른의 잔소리가 먹혀들지 않나를 알것같다. 특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입에서 설교조의 잔소리가 떠나지 않는 어른이 아이들 눈엔 얼마나 우습게, 싫게, 비칠것인가, 그런 설교의 비교육적 효과에 대해서도 알것같다.
질서를 안지키는 것도 문화민족의 수치겠지만, 자기가 속한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이 없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도 문화민족의 수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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