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부정곡의 저의를 알려면 「오늘의 일본」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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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 미국에서의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지가 일본교과서 왜곡문제를 1면기사로 다뤘을때 나는 사건의 심각섬을 직감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미국의 경치지도자와 관리들이 모두 한결같이 일본재무장의 긴급성을 역절했을 때 나는 일본인들의 자만심을 배후에서 부채질하는 미국의 근시안적 실리주의 정책이 이 문제에 대한 간접적 책임도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주말 귀국해서 나는 그동안 밀렸던 우리 신문들을 들춰 보면서 이 문제의 파고와 강전도를 재삼 느낄수 있었다.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사실은 단순한 정치문제가 아니다. 2차대전패전후 반재화 했던 일본인들의 자만심, 팽참주의, 군국주의 등이 표출된 증좌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방치해 두어서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위협 할 수 있는 문제다.『도대채 일본은 이해할 수 없단 말야. 민주화된 것 같으면서도 군국주의가 농후하고 서구화된 것 같으면서도 사무라이타신이 건재한 그 나라를…』
이렇게 뇌까리던 어느 미국친구의 푸념 어린 말이 회상된다.『일본은 2층 가옥에 비유될 수 있어. 1층은 서양식구조고 2층은 정반대로 완전한 일본의 재래식 구조지. 그런데 두 층사이에는 계단이 없어.이것이 일본의 혼돈된 정신적 2층 구조란 말야.』
이렇케 말하던 어느 외국인사의 일본관도 기억난다.
「가깝고도 먼 나라」 가장 많은 것을 알면서도 아직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라, 일본.
그러나 교과서의 역사왜곡에서 이제 일본인들의 본심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아무리 산업화·민주화가 표면상으로 진척되더라도 변하지 않은 지면의 잠재의식이 점차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패전후 그들이 말해온「1억인 총참회」는 「다떼마에」 (건전) 에 지나지 않았으며 사실 「홀네」(본심)는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일본의 젊은이들, 특히 좌익 인텔리들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일본 안에서도 문부성에 대해 비판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적군파가 이스라엘 공항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총기로 학살했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재래식 사무라이정신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우리는 일본인들의 잘못된 복고주의를 비판만 하고있을 것인가.
나는 일본의 역사왜곡사건은 그들의 탈아논적 허구성을 비판함과 동시에 우리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대일감정은 일시적으로 흥분했다가 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족정신에 내면화하여 항구적으로 자손들이 영구히 기억할 내용인 것이다.
우리는「한일합방」의 망국의장을 일본침략주의와 몇몇 매국노들의 소행으로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내부의 무기력화와 퇴영화를 하루속히 떨쳐 버리고 균형있는 역사의식을 내면화 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예방 해야한다.
또 한국사 교육도 분한말에서 그치는 잘못올 넘어서서 일제시대의 긴장과 우리의 독립은경사를 그대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나는 금년에 이르러서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63주년기념을 건국이후 처음 가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리 역사에서 임정의 업적을 빼 버린다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김구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의 피나는 항일투쟁이 있었기에 우리는 일본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을 유지해온 것어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의 유품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하나도 엾대서.
나는 우리의 역사의식의 결여 를 개탄한다. 미국과 같이 역사가 짧은 나라도 역사를 소중히 하는 마음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다. 워싱턴 교외의 마운트버넌에 있는「조지·워싱턴」대통령의 저택에는 지금 그가 살던 때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물들이 가득하다.
「독립의 아버지」를 이렇게 소중히 모셨다고 해서 영국과의 관계가 나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도시의 거리, 대학의이름이, 또 동상이 그를 기념하고 있는가.
우리의 독립운동 기억하고 그 유물들을 보고 그 정신을 새세대의 마음속에 내면화하는 동시에 우리의 독립을 앗아갔던 일본을 좀더 주시하고, 연구하고,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손자의 병법에도「지피」의 중요성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일본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엔 그 나라에대한 무지의 위험이 숨어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성장한 세대는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일본관을 그대로 가지고 오늘의 일본을 말하고 있다.
종더 깊이 연구하고 새로운 일본관을 항시 발전 시키는뎨 우리는 인색하다.
젊은 새대는 일어를 배우고 일본인과 접촉하는 점도 이상의 일본을 알고 연구하려는 깊이있는 노력이 결여돼 있다.
대학에서의 일본연구의 심도도 마찬가지로 피상적이다. 서울대의 일본연구소가 있는 정도다. 우리가 역사·정치·경제·사회와 전분야에서 일본을 분석하는 연구를 계속하여야 이번 일본교과서의 역사 왜곡문제의 깊은 학원과 앞날의 전망을 할수 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가 새 전기가 되어 우리는 좀더 깊은 역사 의식을 갖고 지피·지기하는 노력이 지속되기 바란다. 이원고<경희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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