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쪽지예산’도 없앤다는 약속, 꼭 기억할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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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년도 예산안 370여조원을 마지막으로 조정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구성됐다. 여기서 최종 확정되는 예산안은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로 넘어간다. 조정소위 위원은 여야 15명이다. 전체 의원 300명을 대표해 나라 살림을 가다듬는 중요 과업을 맡은 이들이다.

 이 조정소위는 그러나 그동안 오명(汚名)이 많았다.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은 물론 이른바 실세를 비롯해 동료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을 집어넣으면서 막판 ‘마법의 도가니’가 되기 일쑤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예산을 뜻하는 ‘형님예산’, 여야 중진 실세를 봐주는 ‘실세예산’, 이런저런 민원이 쪽지로 전달되는 ‘쪽지예산’이란 말이 나돌 정도였다. 최근에는 문자나 카톡으로 전달되는 ‘카톡예산’이 등장하고 있다.

 막판 요지경 예산 증액은 거의 매년 되풀이됐다. 쪽지예산은 2011년 2000억원대에서 2012년에 4000억원대로, 2013년엔 5500억여원으로 매년 늘어났다. 방법도 다양해 2012년 말에는 여야 간사가 회의록도 남기지 않고 거액의 증액을 한 후 번개처럼 해외로 떠났다. 지난해 말에는 야당 의원이 여당 실세가 100여억원의 경북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었다고 주장하는 등 쪽지 파동이 반복됐다. 조정소위는 외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국회 내 밀실이나 호텔 방에서 막바지 작업을 하곤 했다.

 홍문표 예결위원장과 조정소위의 여야 간사 등은 한결같이 올해부터는 ‘쪽지예산’ ‘호텔예산’ 관행을 없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이런 공언이 얼마나 지켜질지 의심스럽다. 올해는 세월호 사태로 인해 국가 대개조의 차원에서 정치개혁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됐다. 주요 개혁과제가 의원 특권을 내려놓는 것인데 쪽지예산도 대표적인 특권이다. 그래서 ‘요지경 예산 계수조정’이라는 악습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종결돼야 한다. 만약 국회 본회의에 올라온 예산안에서 편법적인 쪽지예산·실세예산이 발견되면 여야는 반드시 이를 빼내야 한다. 수백억~수천억원이면 복지의 상당 부분을 감당할 수 있는 거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