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타임] 중년 아줌마까지 살과의 전쟁, 나는 나…몸짱? 배짱이면 어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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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여자가 자신의 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이는 몇 살쯤일까. 나이 먹어가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심하면 이것이 스스로를 구속하기도 한다.

오십을 바라보면서도 사춘기인 10대 때부터 바로 얼마 전까지 몸과 전쟁을 벌이면서 살던 한 선배가 있다.

"그 나이 아줌마 몸매 다 그래요, 웬만하면 그냥 편하게 살아요." 이런 주위의 한마디를 선배는 늘 일축해 왔다.

"너는 모른다, 난 한번도 날씬해본 적이 없어. 그건 나의 목표이자, 소원이자, 목마른 갈망이야." 음식을 앞에 두고 한번도 긴장을 풀지 못했던 그 선배에게 잘 차려진 식탁은 고문이자, 아픔이었다.

선배는 독한 마음을 먹고 고된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5일 만에 그만둬야 했다. 오른팔과 다리의 마비증상 탓에 병원을 찾게 됐고, 가벼운 뇌경색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결국 한달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다.

"당신 뚱뚱해도 나에겐 오직 당신뿐"이라며 격려하는 남편과 "나는 뚱뚱한 엄마가 좋아"라는 딸아이를 보며 그 선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렇게 살자. 죽는 것보다 낫잖아"라며.

퇴원한 뒤 문안차 선배를 찾아갔더니 그의 생활태도가 확 바뀌어 있었다. 오로지 운동만이 살길인 양, 무엇에라도 쫓기듯 하루의 대부분을 투자하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 대신 왠지 여유있는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얘,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심신이 이렇게 편해진다는 걸 예전엔 왜 몰랐을까. 누가 내 뚱뚱한 몸에 관심이나 있겠어. 아무도 나 안 쳐다보더라. 이 몸에 관심있는 사람은 결국 나뿐이었어. 이젠 살 때문에 못 입었던 옷들 실컷 입을 거야."

선배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강박관념을 떨쳐버려서인지 생활태도에도 자신감이 느껴졌다. 선배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건 결국 가족의 사랑 아니었을까.

"나를 구속한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선배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집에 돌아와선 이 말을 여러 번 되뇌어봤다. 중년의 주부를 주눅들게 만드는 것이 어디 외모뿐이랴. 나는 또 무엇으로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지 따져볼 셈이다.

남경화(주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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