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게르만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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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런던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을 보낼 양으로 영국인의 인종차별을 규탄한다.
로마의 외국인들은 스파게티의 맛을 심심풀이로 화제에 올리며, 파리의 외국인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치즈 맛을 평하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러나 서독에 거주하는 외국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게르만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그들의 나태를 꾸짖는가하면 불합리성을 규탄하고 때로는 지난 과오를 질타한다. 게르만에 대한 비판은 이렇듯 다양하다.
최근 30명의 본 주재 외국 특파원이 펴낸「포박된 거인」(Der gefess-elte Riese)에 나타난 게르만 비판은 이러하다.
▲「블라디미르·미하일로프」(소련)=제국주의적 전통과 파쇼의 전통이 공존하는 나라.
▲「프랭클린·조넌」(미국) =누구나, 또는 무엇이든 규제로 얽어매려는 나라.
▲「이반·리프베르츠」(헝가리)=저축만 강조하니 매스껍다.
▲「즐라프·그란-홀손」(노르웨이)=독일은 언제나 음산한 분위기다. 외국인들은 독일이란 말만 들어도 무조건「색 안경」을 쓰려들 만큼 과거의 역사를 지우지 못한다.
▲「조너던·C·카」(영국)=서독이 서구의 통일이라는 희망이 사라질 때쯤 동구로 전향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외국인의 대 독관은「그란올손」의 지적처럼 색안경을 통해 내리는 평가다.
예컨대 감소 일로의 인구 증가책으로「아동 육아비」를 인상하겠다면 인접국가들은 병력증강 계획의 시작이라며 색안경 쓴다.「슈미트」수상의 발언 한마디에「동방정책의 도약」은 물론 심지어는「핀란드 화」란 말까지 튀어나온다.
서구세계의 반응도 색안경을 쓰고 있다.
중·소 관계가 후퇴하고 미·중공관개가 재정립되는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을 살피면 서독이 동구권에 붙는다하여 그리 놀랄 일도 아님에도 가능성마저 거의 없는 가설로 서독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것은 차별 대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유럽 사람들의 대 독관도「포박된 거인」으로 집약된다.
서독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는 개르만에 대해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낮은 점수를 매긴다.
78년 현재 게르만에 대한 프랑스인의 긍정적 평가(우호)는 불과10%로 소련을 약간 상회하며 서독의 군사력을 적정선으로 보는 프랑스인은 13%, 그나마 군사력 강화를 희망하는 사람은 4%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게르만 공포주의가 오늘까지 이어져「드골」파의 50%와「지스카르」파의 43%가 새로운「히틀러」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있다.
도버해협 건너의 영국도 독일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무려 27%에 이른다.
이같은 반 독 현상은 북구의 스웨덴까지 번져 소련으로부터의 계속적인 위협속에 살고있으면서도 서독의 군사력 증강을 희망하는 사람은 3%선에 그친다.
이처럼 게르만의 모습이 나라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처럼 게르만 자신의 평가 역시 다양하다.
게르만들은 근면하고도 합리주의적인 민족임을 자부한다. 반면에 그들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34%에 이르고 있다.
더구나 통일에 주장이 엇갈리고 독일이란 단어까지 마음대로 해석한다.
지난해 실시된 통독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 서독사람의 68%가 서독으로의 동독 합병을 주장했고 대등한 관계의 통일이 17%이며 아무래도 좋다는 답변이 7%, 심지어「동독으로의 합병을 원하는 사람까지 적지 않았다.
「독일」(Deytsctschans)이라는 단어의 해석은 전체의 57%가 현 서독을 연상하며 11%는 양독, 그리고 11%는 독일제국의 옛 영토까지 포함한다.
또「국호 부재현상」도 이같은 의식구조와 맥락을 같이한다.
축구장에선「독일 연방 공화국」(BRD)이라는 국호대신「독일」만을 외쳐대며 슈피겔지 등 언론기관은「연방 공화국」(Bundesrequblik)이란 이름을 국호대신 곧잘 사용한다.
세계 대전을 겪은 후 다시 분단의 쓰라림을 안고 있는 게르만들의 사고는 이처럼 정착돼 있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프랑스의「피에르·비노」가 이미 50년 전에 갈파한「독일의 불확실성」 (Inceryiyiitudes Allemandes)으로 표현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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