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시간 죽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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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째깍째깍. 나흘 후면 신촌의 한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한다. 일 년 전 이맘때. 남녀노소, 강남사람 강북사람, 시골사람 서울사람, 아마와 프로. 이렇게 비빔밥처럼 우리들은 만나서 7인조 록밴드를 만들었다. 나와 보컬만 빼고 나머지는 프로다. 그래서 걱정이다. 걱정은 살아 있기에 있는 거라는데. 어쨌든 잘 끝내자. 아, 시간아 좀 빨리 가라. 다른 때는 한 달 전 일이 어제 같고, 몇 년 전 겨울을 작년 겨울로 착각하고, 뭐 그러더니만. 이번엔 무척 더디다. 남은 시간을 빨리 때울 방법 없나.

 뜨개질과 사우나를 거의 매일 하는 친구가 있다. 뜨개질도 사우나도 시간 죽이기에는 ‘딱’이란다.

 ‘다 만들어진 스웨터를 입은 아이의 모습이나 보들보들한 내 피부’가 목표라면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게 즐겁기도 하겠건만, 그냥 별생각 없이 시간 빨리 보내기 위해 하는 거란다.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 종착역이 죽음 아니냐고 물었다. 마땅히 가질 꿈도 없고 또 가진다고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도 없고, 또 인생이 다 비슷비슷 그렇게 시간 죽이며 사는 것이 아니냐며 씁쓸해하던 그녀.

 ‘All our dreams can come true. If we have the courage to pursue them(모든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진다. 밀고 나갈 용기만 있다면)’. 월트 디즈니의 말이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아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단서가 하나 있다. 그걸 밀고 나갈 용기는 필수란다.

 언젠가 만났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주어진 시간만 무한하다면 못 이룰 꿈은 하나도 없다’고.

 나는 꿈 갖는 일에 매우 부지런하다. 이룬 것도 있고 진행 중인 것도 있다. ‘귀향 같은 귀농’은 이미 이룬 셈이고, 환갑에 유명한(?) 밴드의 하드록 드럼 주자가 되겠다는 건 진행 중이다.

 이 세상에는 꿈만 꾸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꿈을 꾸는 동시에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 믿고 나갈 용기와 믿음이 있는 나는 적어도 그들보다 행복할 게다.

 올가을에는 이 시간에도 사우나에서 ‘시간 죽이기’ 하고 있을 그 친구에게 ‘꿈에다 용기’까지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련다. 무슨 일이든 목표를 첨가하면 일단 꿈이 되고, 그다음엔 용기만 내면 되니까.

 그나저나 관절 마디마다 다 쑤셔서 큰일이다. 연주나 제대로 할까나. 하지만 상관없다. 내 목표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 더 중요하니까.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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