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문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5호 31면

러시아 하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상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내가 그동안 만났던 한국인도 그랬다. 외국인들은 시베리아 철도에 대해 말할 때면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오랫동안 꿈꿔 왔던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여행담을 얘기하는 듯했다. 아니면 앞으로 꼭 한 번 해 보고 싶은 여행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유럽의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이 철도를 이국적인 감성을 갖고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의 이런 태도에 러시아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별 관심 없지만 예의상 응대를 하는 식이다. 러시아인들은 왜 시베리아 철도에 애정을 갖지 않을까. 시베리아 철도에 대한 다른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 철도를 휴가지까지 연결해 주는 수단으로만 생각한다. 휴가지에 빨리 도착해 즐겨야 하는데, 속도가 느려 여러 날을 달려야 하는 것을 지겹게 생각하는 것이다. 즉 시베리아 철도는 느림보 교통수단일 뿐인 것이다. 특히 샤워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낯선 사람들과 객실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는 것도 큰 불편이다.

반면 외국인들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낭만이 깃든 교통수단으로 생각한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여러 날 동안 광활한 대지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여행의 묘미가 된다. 아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는 외국인 여행객들은 대자연을 개척하러 나선 파이어니어와 같은 마음 자세를 가질 것 같다. 더불어 프랑스 파리와 터키 이스탄불을 잇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가 주는 낭만도 함께 느낄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 철도를 생각하듯 과거 러시아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상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윈스턴 처칠은 “러시아는 불가사의 속의 미스터리로 포장된 수수께끼 같은 나라”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교통수단의 발달로 러시아가 더 이상 수수께끼 같은 나라로 남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러시아는 현재 다른 나라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일부 외국인이 러시아에 대해 음울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군사력과 경제력 등 하드 파워도 중요하지만 문화와 관광 등 소프트 파워도 무시 못한다.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가 선진국이며 강대국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 볼 때 현재 러시아의 대외 이미지는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던 한 한국인 친구는 국가 이미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프랑스나 일본 같은 나라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강점을 최대한 홍보하면서 좋은 국가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러시아와 한국의 경우 아직 좀 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한국도 최근 한류로 인해 이미지가 크게 개선되기는 했지만 전통문화 등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지도가 아직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사실 앞서 언급한 러시아인들도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길이만 9288㎞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동서철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일주일을 꼬박 달려야 도달한다. 인간이 만든 위대한 인공물 중 하나인 것이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인들은 시베리아 철도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프랑스나 일본인들이었다면 어떠했을까. 국가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장단점부터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프트 파워가 중시되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이리나 코르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의 국제경제대학원을 2009년 졸업했다. 2011년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의 HK연구교수로 부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