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호기심·불만, 자연스런 출구 열어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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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청소년들의 비행·폭행·범죄·탈선행위가 나날이 그 도를 더해 간다고 한다. 순진하고 정직하고 고분고분하게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할 청소년들이 시키지도, 가르치지도 않는 일을 마치 골라서하듯 한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범죄기사를 보면 청소년들의 비행을 탓할 염치가 없어진다. 더욱 잔인해져가고, 규모가 커져 가고 더욱 끊일 날 없이 일어나는 것이 이른바 어른들의 범죄다.
청소년들은 그래서는 안되고 어른들은 하다가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논리는 성립되질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따라 나쁜 행위를 하게된다는 논리로 청소년들의 비행을 옹호하거나, 그 책임을 성인들에게만 물을 의사는 추호도 없다.
다만 청소년범죄나 탈선은 청소년만의, 일시적인, 한국에만 있는 현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청소년이 있는 곳에 탈선은 언제나 있었다.
인류역사의 시초에 이미 「카인」은 동생「아벨」을 돌로 쳐죽이는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던가? 청소년범죄행위나 비행 하나 하나를 없애고자 한다면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소년범죄의 예방이나 탈선방지책은 근본적인 인간교육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누구보다도 호기심이나 꿈이 많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자기를 나타내 보이고도 싶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창의력이 있고, 의지가 굳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들이 배운 창의력이나 용기를 행사하려고 하면 부모나 선생님은 가로막고 나선다. 그런 짓은 위험하니까 안되고 나중에 커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으니까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품고있는 호기심, 욕구, 불만 모두를 내일로 내일로 미루어나간다. 이런 까닭에 정상적으로, 부모나 스승 내지는 사회의 인정 속에서 그들의 나래를 펼 수가 없으니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출구를 찾게 된다.
어떻게 보면 청소년의 비행은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것이다. 높은 건물에 피뢰침을 달면 벼락이 내릴 여지가 없다. 방전효과라던가?
청소년들 내부에 터질 것처럼 쌓이는 봇물이 자연스럽게 흘려 내릴 수로를, 다양한 수로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부모와 더불어, 선생과 더불어, 사회와 더불어 그들의 호기심을 시험하고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
가정, 학교, 보도매체, 사회전체가 청소년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고 그들과 더불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일이다. 청소년의 사회화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같은 논리로 사회의 청년화 역시 요청되는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에게 실패할 수 있는 용기를 주자. 또 그것을 고무하자. 그들이 지닌 강렬한 호기심과 욕구를 펴낼 수 있는 여지를, 기회를 주자. 그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해주자. 이 보다 더 그들이 무엇이든지 해볼 수 있게 질적인 활동의 영역을 넓혀주자.
청소년들이 어른 편에 서라고 말하지 말고 어른이 청소년입장에 서서 그들의 꿈을 펴나가는 길잡이가 되어 솔선 수범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청소년지도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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