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戰의 과거 잊어주오" 佛, 美에 구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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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반전을 외치던 프랑스가 달라졌다.

바그다드 함락을 앞두고 미국에 구애(求愛)의 미소를 흘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애정 표현이 완전히 노골적이다.

도미니크 드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14일 전후 이라크 복구 과정에서 유엔의 주도적 역할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내비쳤다.

드빌팽 장관은 유럽연합(EU) 월례 각료회의에서 "미 행정부가 담당할 역할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우방끼리 반전과 참전으로 갈라졌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프랑스의 태도 변화는 유엔을 내세우며 미국과 계속 맞서기보다는 미국의 기득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복구사업 참여 등 경제적 실리를 얻는 데 유리하다는 계산에서다.

드빌팽 장관은 지난 주말 이집트.레바논.시리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 순방에서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느라 바빴다. 출발에 앞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를 만나 안심을 시켰다.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시리아에도 도발보다는 "참는 게 살 길"이라고 조언했다. 파룩 알샤레 시리아 외무장관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자 드빌팽은 "생각이 다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프랑스의 이러한 변화는 아랍국들은 물론 지난 주말 정상회담에서 대미(對美) 공동 전선을 형성하려 했던 러시아와 독일을 놀라게 하고 있다. 특히 EU 회원국인 독일이 더욱 그렇다.

16일 아테네에서 열릴 EU 정상회담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초청, 이라크의 미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 상황에서 EU의 무게 중심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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