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인가 개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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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의 생활주변은 날로변해간다. 수출고의 초과달성이니, 공장등의 시설확장이니 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고속도로가 이리 저리 뚫리고 그 연변의 원시적인 초가집들이 헐린 자리에 울긋불긋한 문화주택들이 즐비하게 섰다. 초가집이 주는 석취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나 나는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확실히 이것은 진보며 개량이며 전진한 것이다.
하나 이것은 물질적 생활, 다시 말하면 자연과학적 생활면에서 그렇고 정신적 생활, 즉 예술·종교·도덕및 사회제도면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즉 변화나 변경을 그대로 발전이나 개선으로 받아 들여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범하고있는 것이다.
한 두 개의 실례를 학체면에서 들어 보자.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들어 가는데 무시험추첨제를 채택했다.
어린이들의 체력발달에 좋은 영향을 준다니 수긍이간다.
다음에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추첨제가 채택되었다.
찬·반 양론이 꽤 격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때 나온 것이 평준화란 말이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평준화는 시설·교사에의 대우등의 평준화지 우수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우둔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것은 아닐줄 안다.
하나 현실적으로는 우수한 아이들을 우둔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평준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한다. 여기서 우열반을 구별해서 수업을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대두되었으니 이것은 아이들에게 한편에서는 열등의식을 불어넣어준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것이 요즈음에는 우열반을 편성할 수 있다는 서울시교육감의 지시가 내렸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동안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랬다 저랬다 정신을 못차렸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실험대학의 문제도 그렇다. 벌써 대학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것을 비판·반대하는 소리가 높다. 1백40학점으로 깎아내린 것도 그렇지만 계열별 모집에서발생하는 여러가지 모순, 교양과목에 채점문제등 불합리가 이만 저만 아니라고들 한다.
이렇게 되면 개선이나 개량이 아니라 개악이라는 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도의 변경, 새로운 법의 제정, 제규칙의 개정등이 반드시 진보나 개선을 뜻할수 있는 것이 아니요, 경우에 따라서는 개악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제도에도 합리성과같이 비합리성이 따르는 법이지만 문제는 어느쪽이 더큰가에 달려있다. 이것을 미리 알아차리는 예지가 있음으로써 그 제도하에 사는 사람이 실험실의「모르모트」의 신세를 면할 수있을 것이다.

<전북대교수·철박>
▲조도전대졸업▲전북대대학원장역임▲한국철학연구회회장▲저서『논리학강요』의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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