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주의 비밀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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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무부는 16일 전 금융기관에 대해 예금·적금 등 모든 수신활동에 대한 비밀보장을 철저히 지키도록 강력 지시했다. 재무부의 이러한 지시는 박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이라 한다. 재무부의 지시에 대해선 전적으로 찬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이런 지시가 왜 새삼스럽게 나오게 되었으며 그것도 대통령특별지시라는 강도를 띠어야 했는가에 대해선 상당한 의문이 없을 수 없다.
정부가 새삼스럽게 예금의 비밀보장을 지시한 것은 바꾸어 말해 예금의 비밀보장에 미흡한 점이 많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 동안 예금의 비밀이 과연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어왔다.
예금에 대한 비밀보장이 저축증강이나 신용질서의 유지를 위해서 또 국민기본권의 보장을 위해서 긴요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은행에 대한 공신력유지를 위해서도 예금에 대한 비밀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때문에 「예금·적금 등의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이미 61년도에 제정되어 법적인 보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이 예금에 대한 비밀을 보장한다는 것은 이미 법률적으로 의무화되어 있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이 갖는 직업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당연히 지켜야할 책무인 것이다. 예금에 대한 비밀보장은 은행으로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이런 명백한 사항이 재론된다는 것은 금융기관이 이제까지 당연히 지켜야할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며 이를 감독할 위치에 있는 은행감독원이나 재무부도 제할 일을 다 못했다는 반증이 아닌가.
그런데 금융기관이 예금에 대한 비밀보장을 못하는데는 스스로의 직무에 투철하지 못했다는 점도 있지만 그렇게 안될 수 없는 여건이 있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에 대해 예금에 대한 비밀을 내놓으라고 할 정도이면 아무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금지되어 있는 예금정보를 누설할 정도이면 그렇게 안하고는 못 배기는 압력이 있었다고 보아야한다.
현재와 같은 금융기관의 허약한 위치나 희미해진 직업 관에 비추어 외부의 요청에 대해 감연히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모든 금융기관 종사자에게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예금비밀 보장은 금융기관의 자체노력에 못지 않게 그런 요청을 삼가는 전반적인 풍토개선이 선행돼야할 것이다.
물론 금융기관에 대해 예금정보를 요구하는 측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고 해서 수단이 정상화 될 수는 없다. 지엽적인 목적을 위해서 은행에 대한 불신·예금기피·신용질서의 파괴 등의 사태가 온다면 그야말로 「쥐를 잡으려다 독을 깨는」사태가 일어날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이번 예금비밀보장에 대한 특별지시를 계기로 우리 모두가 자기직분을 다하면서 남의 직분을 존중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인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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