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한방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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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차 대전 중에「로이드·조지」영국수상은 하원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로 의원들을 웃겼다.
30년대의 엄청난「인플레」가 일어날 무렵「프러시아」의 두 형제가 똑같이 유산을 상속받았다. 알뜰한 형은 재정관리자가 신중하게 골라준 일류증권에 투자했다. 낭비벽이 있는 동생은 닥치는 대로 포도주를 사들였다.
「인플레」가 시작되었다. 형의 자산은 계속 줄어들어 갔다. 그는 6년 동안 상심의 나날을 보냈다.
같은 기간동안 동생은 술 창고 속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술 창고에 남은 술값은 형이 움켜쥐고 있던 증권 값보다 몇 갑절이나 더 비쌌다.
결국「인플레」의 시절도 끝났다. 이 무렵에는 술 창고에도 빈 병들만이 남았다. 동생은 그 빈 병들을 모조리 팔았다. 그래도 그것이 형의 증권보다 더 많은 돈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는 것이다.「로이드·조지」는 이런 얘기와 함께「인플레」극복에는 절약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리려 했던 것이다.
한 세대 전의 경제원론을 보면「인플레」때에는 지폐나 증권과 같은 종이들 보다 물자를 사들이는 게 좋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요새「인플레」는 그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불황 속의「인플레」인 것이다. 그것도 날로 증세가 악화되어 가는 만성불황 속의「인플레」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란 말은 영국보수당의 고「매클라우드」장상이 엮어낸 신조어이다. 불황(스태그네이션)과「인플레」를 합친 것이다.「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또 「슬럼프플레이션」이란 말도 발명해서 사용한다. 그 어느 말이나 웬만한 요법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포춘」지를 보면 어느 미국경제학자는「인플레」퇴치를 위한 한방요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럴 법도한 얘기다.
「인플레」를 누르자면 불황이 심해질 위험이 있고, 불황을 누르자면「인플레」가 심화할 염려가 있다. 그러자니 한약을 달여먹 듯 이 약재 저 약재 여러 개를 함께 섞어서 동시에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 집이 전혀 다른 약재들을 뒤섞어 쓰는 것은 아니다. 병원의 기본선을 찾아내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병세에 맞도록 조제하는 대중요법이다.
더우기 한방요법의 원칙은 이열치열이라는데 있다는 이것을 그대로 따른다면 혹은「스태그플레이션」의 증세가 더욱 악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경제학자의 말로는「인플레」한방요법으로도 3년 내지 5년이 걸린다고 한다. 한방요법이란 어느 것이나 장기요법이다.
따라서 당장에 효험이 있기를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3∼5년간이다. 그 동안을 견딜 만큼 강한 체질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야 큰 걱정은 없다. 그렇지 못한 듯하기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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