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그레」경감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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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주섭일 특파원】「메그레」경감이 사망했다. 이 한마디로는 언뜻 납득되지 않겠지만 프랑스의 추리소설작가 「조르지·심농」작품주인공 「메그레」경감이라면 누구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심농」이 앞으로 작품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철학적이면서도 고독한 명수사관 「메그레」경감의 활동은 중단된 것이다. 「심농」이 지난 55년 동안 발표한 작품은 무려 2백14권-작년 2월에 출판된 『「메그레」경감과 「샤를」씨』가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항상 담배파이프를 입에 꼬나 물고 옅은 회색「바바리·코트」차림에 과묵한「메그레」경감의, 범인의 심리를 항상 앞서 판독하는 민활한 수사활동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된 수많은 독자들은 「심농」에게 「메그레」경감을 소생시키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으나 그는 이제 정말 『「메그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고 담담히 말했다고-.
「내 친구 「메그레」』라는 추리소설을 처음 쓴 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아 「메그레」는 「루팡」식 종래의 탐정소설을 탈피하고 새로운 문학의 한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았던 그는 창작을 중단하게된 동기에 대해 재미있는 발언을 하고있다.
『지난 55년 동안 나는 내 작품의 주인공들의 생활 속에서 살아왔다. 이제 나는 내자신의 생활 속에서 살고싶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주인공들의 생활에서 해방되어 완전한 나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고싶다. 지금까지 나는 내 주인공의 노예가 되어왔으며 이제 너무나 지쳐버렸다』라고.
그는 작품에 대한 미련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즉 「에파렝주」에 있는 거대하고도 신비한 그의 저택을 팔고 스위스의 「로잔」에 한 아파트를 구해 이미 작년 10월에 이사했다. 「메그레」경감의 산실이었던 「에파렝주」의 저택은「메그레」경감의 취미를 살려 담배파이프의 수집을 비롯한 모든 생활이 이른바 「메그레」경감식으로 꾸며져 있어 인연을 끊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이를 청산하기 위해 이사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또 그는 작품을 쓰지 않는다는 목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최근 작품생산의 도구요, 그의 충실한 반려자이기도 했던 타자기마저 팔아버렸다고 한다.
70세의 고령인 그는 「메그레」경감과 이별한 또 하나의 이유로 시간을 들었다. 『이제는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점점 더 힘이 들게 되었다. 나는 한 장을 집필하기 전에 반드시 진정제를 복용해야만 했다. 만일 내가 「메그레」경감을 더 오래 살려두려 한다면, 다시 말해 작품을 계속 쓴다면 내 자신이 2∼3년 안에 「메그레」경감에 의해 살해될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 그는 5년전 주치의 진단을 받은 후 「메그레」경감의 친구요, 아버지답지 않게 이렇게 선언한 일이 있었다.
『내가 한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는 원칙적으로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했다. 아침부터 밤, 저녁부터 아침까지, 나의 모든 생은 내 주인공들에 의해 조건지어졌다. 정말 나는 나의 주인공들의 피부 속에 존재했던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기 바로 전에 나는 순수한 감수성의 상태로 나를 두기 위해 모든 나의 개성을 무로 환원시켜야만 했었다….』 이처럼 이른바 추리소설박물관이라 불려졌던 그의 머리도 이제는 지칠대로 지친 것 같다.
우리 나라에도 몇 해전 정명환 교수 번역으로 「월간중앙」에 「메그레」경감이 연재되었지만 사회주의「리얼리즘」이라는 문학이론을 엄격히 고수하는 소련을 비롯 거의 모든 공산국가에서도 인기절정이었던 그의 작품은 프랑스 국제TV에서 3년 동안 시리즈로 방영, 공전의 인기를 거두었으며 유럽이 각지에 「메그레」경감의 동상이 서는 등 범죄의 발전에 맞서는 「메그레」경감의 철학적인 사건처리과정은 범죄수사분야에 큰 공헌을 세웠다는 평판이다. 담배「파이프」를 문 채로 짤막하게 말하고 지시하는 「메그레」경감은 결코 감정의 변화를 표면에 나타내지 않는 과묵성과 고독하게 사건을 뒤쫓아 해결해 내고야마는 말하자면 회의주의적인 낙관론자라고나 할는지-.
「메그레」경감의 아버지격인 「조르지·심농」옹은 「메그레」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고 선언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미련은 아직 버리지 못한 듯 자기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만일 내가 아직도 무엇인가 쓴다면 그것은 단순히 나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결코 그것을 출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누구인가 나에게 말한다해도 즉각 잊어버리고 안락의자에 고요히 앉아있기를 원한다. 지금의 나의 상태는 하나의 방랑자와 흡사한 것 같다』고. 어쨌든 그는 종래의 탐정소설이 문학의 한 「장르」에서 제외되었던 것을 문학사적으로 이를 극복, 새로운 추리소설을 창조함으로써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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