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흰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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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 몇 해 사이 내 머리에 갑자기 흰머리가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새치로만 보였던 흰머리가 이제는 제법 희끗희끗 하게 되었다. 아직 50이 채 못된 내 나이로는 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대학교수라 하면 곧 연구실에서 책만 보고 있는 백발의 가난한 선비를 연상케 된다. 흰머리와 청각은 교수의 「심벌」이다. 그러니 나도 이제는 교수로서의 요건 중 하나는 갖춘 셈이다.
너무 새까만 머리를 가진 교수는 어쩐지 교수답게 보이지 않고 또 너무 부유한 교수도 좀 어색해 보인다. 역시 교수는 흰머리가 성성하고 궁색하게 살아야만 제격에 맞아 보인다. 백발과 가난은 교수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의 독자란에서 『교수와 5원』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버스」에서 내리는 어떤 늙은 승객이 「버스」 값 5원을 아끼려고 차장과 여러 손님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앞 뒤 호주머니를 뒤지는 꼴이 틀림없이 대학 교수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 독자가 교수로 단정한 것을 보면 처신을 잃은 그 늙은이도 꽤는 궁상스럽게 생겼던 모양이다. 이제는 누구나 그 인상만 보아도 교수는 쉽게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덥수룩한 흰머리에 축 늘어진 어깨, 거기에 궁상스런 모습을 한 사람은 틀림없는 교수이다.
사실 오늘의 대학교수만큼 무력 (?)한 존재는 없을 것 같다. 궁핍하고 허약한 자가 교수이다. 아무런 지위도 조그만 권세도 없다. 누가 누르면 꼼짝 못하고 쩔쩔매는 것이 바로 교수이다. 교수는 무기력한 약자이다.
하기야 교수 중에도 강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요령 좋게 현실에 편승하여 출세한 교수도 있기는 하다. 관계로 진출하여 세도를 부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매스컴」을 이용하여 매명하는 자도 있고 모 재벌에 기생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도 있다. 특히 근래에는 대학 안에서도 어느 기관의 우두머리가 되어 조그만 권력이나마 잡으려 애쓰는 교수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야 껌껌한 연구실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이 보다 유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연구실에서 연구에 전념하는 진정한 교수는 역시 백발의 가난한 약자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대학 교수는 결코 불쌍한 자가 아니다.
교수에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질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연구실이라는 공간이고 학문이라는 영역이다. 자기 연구실 안에서는 어떤 권력의 침범도 허용치 않으며 자기 학문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다.
비록 바깥 세계에서는 약자이지만 연구실에서는 강자가 되고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여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부유하다.
오늘의 대학 교수가 그 달갑지 않은 교수의 「심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그래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이런 특권의 세계라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기 또한 교수의 비애가 있다. 교수들의 흰머리가 늘어나는 것은 운명적인가 보다.
변태섭 <서울대 사대 교수<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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