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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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는 헌법 제1조를 근거 삼아 윤락녀가 국회의원에 출마한다.

윤락녀는 사람도 아니라는 듯 인권을 무시한 흑색선전과 음모가 난무하지만 이 열혈녀는 저조한 투표율과 젊은 층의 지지를 업고 당당히 여의도에 입성한다.

촬영을 거부당하자 주연인 예지원이 국회의 담을 넘어 화제가 됐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월담 말고도 몇 가지 용감한 시도를 했다.

첫째, 본격 정치 영화는 아니지만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풍자를 꾀했다. 둘째, 그간 우리 영화가 별로 다루지 않던 윤락녀와 사창가를 소재로 택했다. 세트를 짓는 대신 전주시 선미촌이라는 사창가의 일곱개 업소를 빌려 촬영하는 등 사실감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사창가 여인이 국회의원이 된다는 '한국판 치치올리나'(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 출신 정치인)식 설정은 사람에 속고 사랑에 울던 '호스티스 영화'와는 다를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첫째 항목 평가는 평균 수준이다.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는 새롭지는 않지만 상당히 적나라하다. 화려한 경력과 어깨 힘주기로 태생적 무능함을 가리려는 여당 후보(김용건),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다가 출마했다"는 조폭 출신 야당 후보(원상연), "단군 할아버지는 누가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다 알고 계신다.

크리스마스 때 심판하러 오실 거다"라고 주장하는 민족당 후보(장대성) 등 희극적 캐릭터로 우리 정치판을 축약해 보여준 점은 이 영화의 주된 웃음 포인트다.

그러나 둘째 항목은 아쉽다. 이 영화는 코미디의 틀을 빌려 사창가 여성들을 비하 내지 희화화했다는 비난을 떨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한 화면과 원색적인 농담을 정당화하기 위해 윤락녀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흥미 위주로 치우친 인상이다.

은비의 동료가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나 '누드 정치'를 표방한 은비가 포스터 사진을 찍는 대목은 마치 '안돼요, 돼요, 돼요…'하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앙탈 같다. '윤락녀도 사람이다'라는 명분을 내세우곤 있지만 결국 이들을 눈요깃거리로 다룬 데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마디로 풍자 정신이 살아있는 건강한 유머가 아쉬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풍자의 칼을 빼들었지만 그 날은 무뎠고, 산발적으로 터지는 웃음은 뒷맛이 영 개운찮다. '사방지'를 연출했던 송경식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14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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