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갈수록 위력 … 문화·안보까지 "꿇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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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덩샤오핑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하지만 덩은 전에 없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어진 고르바초프 환영 만찬에서는 덩의 손이 떨리더니 그의 젓가락 사이에서 경단이 떨어지는 장면이 방영됐다. 바로 이날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던 200명이 응급실로 실려갔다.”

 2011년 에즈라 보겔 미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덩샤오핑(鄧小平)의 평전 형식으로 펴낸 『덩샤오핑과 중국의 변화』 가운데 천안문 사태를 묘사한 한 부분이다. 그런데 올 초 이 책이 『덩샤오핑 시대』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출간되면서 한 문장이 사라졌다. 바로 덩이 국빈 만찬 중 경단을 떨어뜨린 부분이다. 이 밖에도 영문판 원본에서 덩샤오핑을 ‘편집증적’ ‘복수심에 불타는’ 등으로 표현한 부분은 중문판에서 삭제됐다. 천안문 사태 때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숙청된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가택연금당하면서 눈물을 흘린 부분 역시 없어졌다. 중국 당국이 출간에 앞서 1년 가까이 이 책을 검열한 결과다.

 최근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중국의 출판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중국 검열 당국의 가위질을 받아들이는 미국 작가들이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출판협회는 지난해 미국 출판사들이 중국에서 e-북을 통해 얻은 수익은 전년 대비 56%나 많아졌다고 밝혔다. 중국 출판사들은 지난해 해외에서 1만6000권에 대한 출판권을 사들였는데, 이는 1996년 1664권에 비하면 거의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작가들이 중국에서 거둬들이는 저작권 이용료도 적지 않다고 NYT는 설명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K 롤링은 지난해 24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 출판업계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작가들로서는 검열을 감수하더라도 이처럼 엄청난 수의 독자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나홀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외면할 수 없다. 보겔 교수 역시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 아무도 내 책을 읽지 못하는 것보다는 내 책의 90%라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열 당국이 가장 많이 손을 대는 것은 중국의 정치와 역사를 다루거나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포함된 작품들이다. 소수민족과의 갈등, 대만 문제, 문화대혁명, 현 지도부에 대한 언급은 중국 당국이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NYT는 설명했다.

 ‘엄마들의 포르노’로 불리며 30여 개국에서 출판돼 돌풍을 일으킨 E 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경우 한 중국 출판사가 지난해 거금을 주고 판권을 사들였지만 아직까지 인쇄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하지만 모든 작가가 당국의 검열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자신의 자서전 『살아 있는 전설』이 허가 없이 편집된 것을 보고 중국에서의 출판을 철회했다. 『중국이 뒤흔드는 세계』의 저자이자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킹은 “정확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으로서 위선적 선택을 할 수 없다”며 중국 출판사의 출판 제의 요청을 거절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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