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이에게 얻은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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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며칠전 옆집 아줌마가 찾아와 어딜 가면 아주 용케 알아맞히는 점장이가 있으니 같이 가서 운수점이나 한번 치고 오자는 것이었다.
원래 점이나 토정비결 같은 것에 대해서는 별관심이 없는 나지만, 혼자 가기 쑥스러우니 바람도 쐴 겸 함께 가자고 하도 끄는 바람에 난생 처음 점장이에게 생년월일을 적어주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반가운 말이 나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이 무슨 청천의 벽력과도 같은 소리란 말인가.
10∼11월중에 남편이 교통사고를 입을 불운이 끼여있으니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아주 안됐다는 표정으로 일러주는 것이었다.
막상 그 점장이로부터 이 말을 들으니 내 온몸이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까짓 점장이가 뭘 알까봐.』 애써 부인하며 머리를 저어보지만, 역시 들은 것이 병이어서 매일 아침 출근하는 그이를 볼 때마다 그 점장이의 말이 나에게 적지 않은 불안을 안겨 주곤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시는 그이에게 『안녕히 다녀오세요』하던 인사말이, 그 말을 듣고난 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여보, 차조심 하셔요』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자 그이는『차조심 하라구? 하하하…당신 아기 낳을 달이 가까와지니까 벌써부터 모성애가 나타나는군』하며 웃으신다.
나는 공연히 부끄러워서 얼굴까지 붉히며 『맞았어요. 이젠 당신 내보내는게 꼭 어린애 내보내는 것처럼 걱정이 돼요. 농담으로 듣지 말고 정말 차조심 하는 거예요.』
이렇게 웃음 반 걱정 반으로 어린애 타이르듯 하지만 퇴근해 오시기 전까지는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질 것을 생각하니 쓸데없이 점장이를 찾아가서 병(병)을 얻은 것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황지연<서대문구 북가좌동 l16의6 9통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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