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딸 왕옌난, 중국 미술계 큰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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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딸 왕옌난(王雁南·본명 자오옌난·사진)은 1967년 문화대혁명 때 목격한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자신의 친척이 그 집안에 소장하던 소중한 미술품을 죄다 찢어버린 일이다. 그 여인은 남편이 홍위병에 붙잡혀간 뒤 홍위병으로부터 괴롭힘을 조금이라도 덜 받으려고 홍위병이 타도 대상으로 삼은 ‘부르주아 예술품’을 집안에서 아예 없애 버렸다.

 “문화혁명기, 학교에선 미술을 배우지도 못했죠. 그런 건 인생에서 해가 된다고만 여겼습니다.” 왕옌난 얘기다. 40여 년이 지나 중국 미술시장 규모는 엄청난 성장을 했다. 지난해 경매 총액은 51억 달러(약 5조5000억원) 로 2008년 15억 달러보다 3배 이상 커졌다. 이 호황을 주무르는 큰손 가운데 경매회사 차이나가디언 대표 왕옌난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현지시간) 지난주 홍콩에서 열린 중국 회화·도자기 경매에서 차이나가디언이 6600만 달러(약 700억원)어치를 팔아 소더비·크리스티·베이징폴리옥션 등에 이어 4대 미술품 경매회사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남송(南宋) 제5대 황제 이종(理宗·재위 1225~64)의 서예 친필을 540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1977년 광저우(廣州) 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한 왕은 80년대 하와이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했다. 차이나가디언을 공동 설립한 것은 93년. 아버지 자오쯔양이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당국의 무력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한 지 4년 뒤였다. “당시만 해도 소더비니 크리스티니 하는 경매사들 이름도 몰랐지요. 하지만 중국인 전체가 그랬으니까요.”

 왕은 급성장하는 중국 미술시장의 힘을 믿고 있다. 이번 경매에서 소더비는 청판쯔(曾梵志)의 2011년작 유화 ‘최후의 만찬’을 2330만 달러(약 250억원)에 팔아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를 세우기도 했다.

“아버지는 일밖에 몰라서 미술품에 대한 애정을 보인 적은 없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이 내게 큰 힘이 된다”고 왕은 FT에 말했다. 자오쯔양은 실각 후 10년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가 2005년 86세로 사망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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