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단장한 비원|전통 500년 다시다듬은 고유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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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수도서울의 한복판 울창한 숲으로 덮인 비원이 보수 1년만에 말끔히 단장했다. 지난 10년간 일반에 개방되면서 마구 더럽혀지고 허물어진 이 넓은 뜨락을 다시 생기를 되찾아 짙은 푸새 내음을 풍긴다. 갖가지 새들은 날아와 합창을 하고 다람쥐가 길을 막고 서선 돌아설 줄 모른다.

<팔도의 나무 골고루 심어>
그것을 아끼고 가꾸자는 것은 결코 관광붐에 편승한 구호가 아니다. 거기에는 이조 5백년의 긴 역사가 서려 있을 뿐더러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돌 하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숨결을 고이 간직한 유산이기 때문에, 비원 그 자체가 온통 가치높은 문화재로 승격한 것이다.
비원은 창덕궁에 달린 산자수명한 후원이요, 객정이다. 원래 금원 혹은 내원이라 일컬었으며, 임금이 자연과 더불어 휴식하고 즐기던 곳이다. 그래서 민간에선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규모의 10만평. 산록의 지세를 좇아 정자를 짓고 연못을 파며 팔도에서 온갖 나무들을 옮겨 심었다. 현존하는 집만도 전당과 정자가 각기 10여채. 연못이 다섯 군데요, 3백종에 달하는 귀한 수목의 자연식물원이다.
건축들이라 하지만 외모부터가 형형색색이요, 저마다 다른 정취를 담고 있다. 연못가의 아름다운 아자형의 부용정, 큰 연회장소로 쓰이던 2층 누각의 주합루, 과거볼 때 임금이 친히 지켜보던 영화당, 민가의 양식을 그대로 옮겨다 지은 연경당이며 짚으로 지붕을 이은 초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즉 비원은 이조시대의 건물양식과 조경 및 생활상까지를 두루 엿보게 하는 산표본이다.

<임신왜란때 불탔다 중건>
그러므로 비원은 궁궐의 후원이라는 점에서만 그 문화재적 가치가 측정되어서는 안되리라. 창덕궁을 포함하여 6백년 고도의 문학적 관록을 기릴만한 데가 이 위에 더 있을까. 민족미술, 특히 건축에 바쳐온 우리 민족의 표현애와 구조미의 전형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를 둘러싼 정원은 본시 그 설계자의 높은 견식에 따라서 건물·담장·공지·석축에 이르기까지 그 높이와 넓이가 계산되어 있음을 본다.
창덕궁은 이조의 세째 임금 태종때(1405년) 이궁으로 창건됐다. 그러나 4백여년전 임신왜란으로 장안의 궁궐이 모두 소실될때 함께 불타버렸는데, 이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조가 망하기 직전인 1908년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인 중건과 중수를 여러번 거듭했으나 원형은 꾸준히 유지돼온 셈이며, 문화민족의 고도다운 관록을 대표하는 유적으로 남아 있다.

<현대화로 아늑한 맛 손상>
문화재관리국은 이번 창덕궁과 비원의 보수정화공사에 2억5천여만원을 투입했다. 건물과 담장의 보수에 1억2천만원, 도로공사에 1억원, 그밖에 3천만원. 작년 6월에 착수하여 만 1년만인 18일 준공식을 갖고 18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그러나 종래처럼 시민의 놀이터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의 박물관으로서 관람케하는 것이다. 이번 대보수가 복원에 목표가 있고 원형을 길이 후세에 전승할 것을 다짐하고 있음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정화사업에는 자연의 분위기를 얼마만큼 되살렸느냐는데 다소의 문제점이 없지않다. 6m너비의 순환도로를 뚫어놓고 보니 뒷동산 오솔길의 아늑한 맛이 한결 가셔버렸다. 강회다짐의 대로와 큼직한 장대석 석축은 생긴 그대로의 지세와 환경을 위압해버려 너무 현대적으로 개발된 느낌이다. 큰 수목밑의 잔나무를 말끔히 제거하고 나니 어설픈 화장냄새도 면할 수가 없다. 너무 곱게 꾸미려다가 손질이 지나친데도 없지않고, 일제의 잔재도 어느 한 구석에선 도사리고 있다. 대보수의 기본 플랜부터 빗나간데가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겠다.<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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