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비만한 아이, 많이 먹는 이유 ‘엄마’ 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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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박사의 ‘9988234’ 시크릿]

가정의학과 전문의
박민수 박사

소아비만 치료를 시작할 때 엄마들이 가장 곤란해하면서도 헷갈려하는 주제가 아이들에게 음식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이다. 가끔 ‘나는 적정하게 주고 있는데 아이가 살이 쪄요’라고 진지하게 반문하는 어머니가 있다. 소아비만아동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중의 하나가 영양평가를 해보면 정작 아이의 적정 필요량보다 많은 양의 음식이 제공되고 있는데도 엄마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제공하는 적정량의 기준은 엄마가 이 정도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아니고, 요리책에 나오는 공식화된 칼로리도 아니다. 적정량의 기준은 아이의 키에 맞는 정상범위의 체중을 유지하며 성장하도록 하는 적정범위의 양이다. 대략 올바른 식습관을 가진 아이들이 평균적인 양이 제공된다면 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융통성 있는 범위이다. 물론 아이가 적정체중에서 점차 체중이 빠져가고 있다면 적은 양이 제공되고 있는 것이고, 적정체중에서 점점 비만해지고 있다면 아이에게 제공되는 양이 지나치게 많다는 반증이다.

진료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왕왕 받는다. 아이들이 부족하게 먹으면 안되니 충분하게 주면 아이가 먹은만큼 먹고 스스로 남기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적당한 만큼 먹지 않고 제공된 만큼 먹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Fisher 등의 연구에 의하면 같은 크기의 접시로 권장량을 제공한 군과 2배에서 2.5배의 음식을 제공한 군을 비교한 결과 2배이상 음식이 제공된 어린이들의 음식섭취량은 권장량을 제공한 군에 비해 25-60%까지 늘어났다. 에너지섭취량 역시 13-39% 증가하여 비만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에너지 과잉을 초래하였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아이들에게 적정량 이상의 음식을 제공한 다음 아이들이 필요한만큼 먹고 몸에서 필요없는 초과량은 먹지 않고 남길 것이라는 생각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겨놓고 안심하는 것처럼 매우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2007년 Condrasky 등이 미국의 요리사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300명의 요리사에게 당신이 손님에게 제공하는 요리량이 적절하냐고 물었더니 76%의 요리사는 적정량을 제공한다(We serve regular portions)라고 답하였지만 정작 90%의 요리사들이 미국권장섭취량을 초과하는 음식량을 제공하고 있었다. 제공하는 음식의 칼로리를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전문 요리사들 마저도 제공음식의 칼로리를 잘못 판단하는 요리자의 착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요리자의 착한 오류란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제공음식의 양적초과로 나타나 결국은 섭취자의 과잉섭취를 초래하는 오류로써 비만을 만드는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손주를 조부모들에게 의탁한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에게서 소아비만이 나타나는 핵심적인 원인중의 하나이다.

제공자의 착한 오류를 극복하는 팁

1. 어른의 식기와 아이의 식기를 다르게 하라
아이에게 어른의 식기로 식사하게 하면 칼로리 섭취량이 평균 30%까지도 더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는 아이의 칼로리 섭취량에 맞는 식기에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2. 아이의 식사를 따로 챙겨라
한국에서는 그릇 하나를 두고 여럿이 식사하는 식문화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식사를 하게 되면 아이가 얼마나 먹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따라서 먹을 만큼만 그릇에 담아 아이에게 따로 주는 것이 아이가 섭취한 음식의 양을 알 수 있어 다이어트에 훨씬 효과적이다.

3. 아이가 비만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줄여라
전에 먹던 양이 있는데 갑자기 식사량이 줄면 아이의 반감이 심할까봐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정해진 정량의 식사량이라는 것이 분명치 않다. 조금씩 식사량을 줄여나갈 경우에는 인지하기 어렵다. 아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음식량에 매우 쉽게 순응한다. 자신의 양만큼 먹기보다는 눈앞에 주어진 음식에 자신을 맞추고 쉽게 그 양에 만족한다. 전보다 음식을 조금 줘도 생각처럼 배고픔을 많이 호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이의 식사량을 줄여라.

4.외식에서는 조금 덜 먹어라
나는 항상 외식에서 나오는 음식은 1.5분이라고 주장한다. 제공자의 착한 오류뿐만 아니라 풍미를 돋우기 위한 갖가지 레시피들이 과식을 조장한다. 다이어트 중이거나 외식이 잦다면 아예 80%만 먹든지, 약간 부족하게 주문하는 지혜를 발휘하라.

넉넉히 많이 주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정량을 먹이는 것이 아이의 미래와 건강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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