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여성정책] 上. 호주제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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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여성계가 새 정부에 바라는 기대는 무척 크다. 노무현 당선자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여성 정책에 대해 뚜렷한 의지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실생활과 밀접한 새 정부의 여성 정책을 두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호주제 폐지 움직임이 본궤도에 올랐다. 최근엔 "이르면 올해 안에 결정적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흘러나오기도 했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건지, 실생활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살펴봤다.

◇호주제가 뭐기에=말하자면 호주제는 가족(家) 단위로 국민을 편성한 것이다.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있는 '호주'(戶主) 아래에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속해 있다.

호적등본과 호적초본을 보자. 자기 이름으로 서류를 신청해도 본인은 호주 아래에 있다. 등본은 호주에 속해 있는 구성원 모두가, 초본은 호주와 본인의 관계만 나타난 게 차이점일 뿐이다.

호주 승계는 남성 우선 원칙을 따른다. 순위는 ①아들②딸③친손자④친손녀⑤아내다. 이렇듯 호주의 아내, 즉 어머니의 법률상 지위는 가장 낮다. 심지어 손녀보다도 낮다. 여성은 결혼을 하면 미혼 때보다 순위가 더 낮아진다.

여성계는 호주제가 여성의 주체성.자율성을 크게 침해하고 남아 선호.가부장 사회를 재생산한다고 비판해왔다. '재혼 여성 자녀의 성(姓)'도 문제다. 재혼 여성이 이혼 전에 낳은 자녀는 재혼 뒤에도 성을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주제 이후의 대안들=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마련 중인 대안은 크게 두 가지다. 여성부가 제안한 '가족편제'와 여성단체의 '1인 1호적제'다.

먼저 가족편제는 우리나라에 호적 제도를 남긴 일본이 1951년 호주제를 폐지하고 도입한 방식이다. 핵심은 부부 동적(同籍)이다. 부부가 결혼과 함께 새로운 호적, 즉 '가족부(簿)'를 만드는 것이다.

부부의 호적상 순위는 동등하다. 호적 승계 순위란 개념도 없다. 여성의 가정 내 지위 문제도 자연히 해결된다. 부부가 상의해 새로운 성씨를 가질 수 있어 재혼녀 자녀의 성 문제도 없어진다.

이에 대해 여성단체는 문제를 제기한다. 가족 구성원의 전입에 관한 기록이 가족부에 모두 기재되기 때문이다. 재혼 부부의 경우 자녀의 성씨 문제는 해결되지만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의 전입 사실은 기록된다. 가정 불화의 불씨는 여전히 남는다는 것이다.

여성단체가 주장하는 1인 1호적제는 스위스.스웨덴 등의 방식이다. 지금의 호적등.초본과 달리 본인이 맨 위에 나온다. 그리고 부모.자녀 등 가족에 대한 간단한 내용이 기록된다.

'개인 호적'도 문제가 있다. 결혼은 본인 호적에만 기록된다. 아버지의 개인 호적에선 딸의 결혼 유무도 확인할 수 없다. 아버지와 남편의 호적 모두에 기록되는 현행 제도와 다른 점이다.

여성부 김애령 정책개발평가담당관은 "국가가 개인의 가족 변동 사항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며 "개인 호적 4천만개를 만들어 관리하려면 엄청난 예산과 인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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