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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31)(제자=김홍대)제 4장 재만 한인 조국광복회 그 조직을 맡은 오성윤|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북한에서 김성주의 경력을 전직으로 조작, 미화해야 최고·유일의 애국 투사요, 혁명가라고 내세우고 있는 그 수백 가지의 거짓말 중 제일 역점을 두어 자랑 선전하는 네 가지의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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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제자=김홍일|「김일성」이란 이름의 최초기록
만주의 중공당과 그 당군인 동군인민혁명군이 조작, 결성됨에 있어서 한인 공산주의자들이 담당했던 역할은 매우 컸으나 그들 속에 김성주는 끼지 못했다. 동북 인민혁명군 속의 한인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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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제자=김홍일|이홍광과 동흥사건
북한측의 주장에 의하면 김성주는 김일성 장군으로 불리면서 1932년 봄부터 동해 일대에서 굉장한 활동을 했다고 하는데 1932년11월께 압록강·두만강 대안에서 활동하고 있던 5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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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제자=김홍일)|민생단 사건 수습과 무관한 김성주
민생단 사건과 혁명의 기반을 소수민족(한인)으로부터 다수민족(중국인)으로 전환한다는 방침 등으로 중공당 및 군 안에서 한인들의 견디기 어려운 곤욕을 치르고 있을때 이 문제를 들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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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제3장 동북인민혁명군 중공 당 유격대 속의 한인|이명영 집필
1938년 가을, 조선혁명군의 마지막으로 남은 대원들이 합류했던 동북항일연군은 중공 당 만주성위 예하 중한공산주의자들의 무장세력으로서 소련의 절대적인 인적·물적 지원덕택에 반만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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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조선 혁명군의 국내 진공|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이명영 집필 (성대 교수 정치학)
조선 혁명군이 일제의 관동군과 교전한 대소 전투의 실적을 샅샅이 알아내기는 힘들다.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2년3월11일에 있었던 흥경성 서쪽 영릉가에서의 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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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조선혁명군정부|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조선혁명군의 양세봉 총사령이 전사하자 그 후임으로 총사령에 오른 사람이 김활석(본명 문빈·또 하나의 별명 문무경)이다. 양세봉이 총사령으로 있을 때까지는 조선혁명당을 지도기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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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양세봉 총사령의 전사|이명영 집필 성대교수 정치학
김성주의 경력을 둘러싸고 북한에서는 여러 차례의 조작·개작·변조·재변조를 거듭한 나머지 마지막으로 내놓은 것이 조작인민혁명군이란 것인데 이런 부대를 이끌고 그가 해방 때까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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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제2장 1930년대의 조선혁명군|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
1932년 여름까지 김성주는 조그마한 무장조직의 일개 대원으로서 살상을 일삼았거나 무송에서 작당하여 무기를 들고 다니며 약탈을 했고, 그러다가 드디어는 우리 독립군을 참살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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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장군」 일수 없었던 김성주|이명영 집필
1932년2월 무송에서 조선 혁명군의 고동뢰 소대장 일행 10명을 참살하고 달아났던 김성주가 어디를 가나 발붙일 곳 없어 그해 여름 조선 혁명군 본부에 나타나 용서를 빌었을 때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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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이명영 집필(성대교수 정치학)|이종락 부대의 종말
김성주의 두목 이종락의 조선 혁명군 길강 지휘부는 중공당 만주 성위의 인정을 받지 못해 그 대원들도 개별 입당 원칙에 따른 만주 성위 예하 조직 가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물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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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9)-제자=김홍일|김성주의 별명도 김일성
김좌진 장군을 죽인 김일성은 죽고 또 간도폭동사건의 김일성도 소련으로 도망친 후인 1930년 겨울께 김성주도 김일성이란 별명을 갖게되었다. 회덕현 오가자에서의 일이다. 김성주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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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적해 본 품질과 수급상의 배경|배달·판매
위생처리를 끝낸 시유는 여러 단계를 거쳐 가정에 직접 배달되거나 접객업소와 상점을 통해 시판된다. 이러한 유통과정에서도 유통구조의 결함과 취급자의 위생관념부족, 가격조작과 상도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