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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모든걸 해줄수 없다 우리도 준비해야
노무현 대통령의 전작권 전환 합의북한의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도발로 연기북한 3차 핵실험 이후 재연기 수면 아래 가라않아 있던 전작권 이양 문제는 2003년 2월 당시 노무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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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노무현 대통령 맞습니까 ?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엊그제 기자회견 내용은 핵실험의 충격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미.일과의 충돌을 무릅쓰면서까지 북한을 감싸고 돌았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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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관련기사 모음]
•부시, '유엔안보리 즉각대응' 촉구 의미 •부시, 北핵실험에 유엔 즉각 대응 촉구 •안보리 수일 내 대북 제재결의 채택 전망 •[北핵실험] 이란 국영라디오 '핵실험은 미국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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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화 의원 "한나라당 성숙하지 못하다" 직격탄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와 관련 한나라당이 취하는 행동들이 성숙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전작권 논의 중단을 촉구하는 자당 의원들의 국회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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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자주 논리에 천용택 "철부지 수준 발상"
국민의 정부시절 국방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천용택 전 장관은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시기를 한미 양국이 10월 논의키로 한 것과 관련, “2012년에 어떤 상황이 올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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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차 21세기 동북아미래 포럼 전문, 2006년 9월 7일
길정우(중앙일보 전략기획이사) : 13번째 동북아미래 포럼이다. 예고한 대로 보시는대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많은 안보 관련 문제가운데 핵심에 서 계신 분을 이자리에 모셨다.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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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수회담하자" vs 우 "면담 신청이 맞다" 신경전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 논의와 관련,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회담 제의를 놓고 여야가 때아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정부가 전시 작통권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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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정기국회 이후 당청 결별, 여당 해체될 것"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은 정기국회 후 당청결별, 여당해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은 "이번 정기국회만 끝나면 당청은 서로의 필요가 소진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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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풍향계] "전시작통권 환수 반대" 51.1%
정부에서 '전시작전통수권'(전시작통권)의 단독수행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정치권 안팎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시작통권 환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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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선칼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보다 조정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시끄럽다. 10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구체적으로 전시작통권 환수 시기 및 로드맵이 논의될 예정이므로 이 문제는 점점 더 시끄러워질 것이다. 우리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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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4년내 작전통제권 반환 통보
미국 정부가 전시(戰時) 작전통제권(작통권)의 한국군 환수 시기와 관련, "오는 2010년 이전에 한국군에 되돌려 주겠다"는 입장을 최근 우리 정부에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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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위한 한·미 동맹인가' 전략 비전부터 만들어야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은 23일 한.미 동맹 로드맵(roadmap.이행계획) 보고서를 내고 "한.미 양국은 먼저 '무엇을 위한 동맹인가'에 대한 명확한 전략 비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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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2군사 평시작전지휘권 미군이양 의미
한국군 2군사령부에 대한 전.평시 작전지휘권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가게 됨으로써 지난 90년이래 추진돼 온 「한국 방위의 한국화」라는 명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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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독자적 戰力증강가능-平時작전통제권 환수 의미
한미(韓美)합참의장이 주관하는 한미 군사위원회(MCM)에서 금년 12월1일부로 평시 작전통제권을 한국이 다시 환수함에 따라 자주적인 한국방위의 기초를 마련하게 됐다. 1950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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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액 싸고 진통예상-韓美 안보협의회
제26차 한미(韓美)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김일성(金日成)사망으로 한반도(韓半島)안보환경이 급변한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과거 어느때보다 회의결과가 주목된다. 매년 SCM 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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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 더 다가선 「자력방위」/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 결산
◎「작전권」 인수받으면 대북발언권 증대/방산로열티 지불품목 줄여 실질소득 8일 폐막된 제24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는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다시 한번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