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무장없인 못다니는 모가디슈(소말리아의 한국군:4)

    ◎밤낮총성… 온전한집 한채도 없어/반군장악 도로탈환… 수송통로 확보/도착날 인사나눈 AP기자 시체로 【소말리아=장남원·안성규특파원】 모가디슈는 열사의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전쟁터였다

    중앙일보

    1993.07.21 00:00

  • (411)|우방 참전부대(12)|호주·「뉴질랜드」군

    육·해·공 3군을 모두 참전시킨 호주와 육·해군만 보낸 뉴질랜드는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며 한국전 3년을 치렀다. 그것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관계처럼 양국도 당시 외교·군사·경제면

    중앙일보

    1973.01.04 00:00

  • (393)|피 어린 산과 언덕(17)|적근산 전투

    중공군은 휴전을 바로 눈앞에 두고 53년5월27일과 7월13일 두 차례에 걸쳐 화천 북방의 한국군 제2군단 지역과 금성·금화지구의 수도사단·제9사단지역에 대공세를 가해왔다. 이 같

    중앙일보

    1972.11.13 00:00

  • 전열 정비하는 사이공 방위-각일각…다가온 월맹의 구정공세

    크레이튼·에이브럼즈 주월 미군사령관이 월남전역의 13만3천명의 미군에 대해 곧 금족령을 내릴 것을 발표하고 월남정부는 사이공 방위에 50만명 이상의 국민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고 8

    중앙일보

    1972.02.10 00:00

  • (2)

    낙동강교두보의 운명을 건 영천회전에서 아군이 대승한 것은 지휘관들의 적절한 작전지도와 장병들의 용전분투 때문이지만 또한 운도 좋았다. 때로는 전투에서 우연한 일들이 승패를 좌우하는

    중앙일보

    1971.02.24 00:00

  • (250)「코끼리귀」에서 이방훈특파원|「캄보디아」전선을 가다

    「델타」중대는「캄보디아」영내 제일 깊숙이 들어와 있는 미군 25사단 제1여단1연대5대대소속 최전방 초소이다. 월남 국경선에서 21.7마일까지 전진했다가 뒤로 물러나 8일 국경선에서

    중앙일보

    1970.05.14 00:00

  • (5)장두성·장홍근 특파원|백마부대

    「나트량」 항에서 북으로 43「킬로」 떨어진 백마부대주둔지 「닌호아」로 가기위해 기자가 탄 「지프」는 해안선을 따라 뻗은 「아스팔트」 길을 60「킬로」의 속력으로 달렸다. 경게병

    중앙일보

    1966.11.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