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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사할린 韓人들
사할린과 중앙아시아는 비행기로 9시간 이상 걸리는 머나먼 곳이지만 서로 사돈을 맺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모든 한인(韓人)들이 결사적으로 한인며느리.사위를 보려고 기를 쓰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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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아타/시의원 당선 이변(설땅없는 중앙아 한인들/현지르포:3)
◎민족차별 분위기에 “청량제”/대세는 못속여 자국 민족 편의 청탁 밀물/구심역 「고려문화협」 뿔뿔이 흩어져 명맥만 중앙아시아의 민족주의 바람은 사막의 폭풍 만큼이나 거세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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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서 독립한 우즈베크공(설땅없는 중앙아 한인들 현지르포:1)
중앙아시아의 한인(고려인)들에게는 2개의 고향이 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되기 전 정착했던 연해주,그리고 고국이다. 35만여명의 한인들은 구 소련 해체이후 소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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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련파 처형되거나 강제노동/“생사라도 알아야”애타는 재소유족
◎“반당분자”로 재판도 없이 숙청/함북농장간뒤 “감감”/박창옥 부수상/“시골서 돌맞아 피살”/박의완 부수상/가족 검거후 무소식/김철우 군사위원/“직장 옮기던 중 처형”/김칠성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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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카자흐대 한국학과서 강의 맡는 헬싱키대 고송무 교수
『카자흐 우즈베크공화국을 비롯, 연해주 몽골지역까지 한글문화를 꽃피워 중앙아시아·중국에 살고 있은 한인들과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인 교수로는 최초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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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영석 국사편찬위원장 르포 특별연재|스탈린 강제이주 20년 전|한국인 모임 있었다.|동포들 한서린 타슈케트
하바로프스크에서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3월11일 아침 일찍 다음 목적지인 중앙아시아 우즈베크공화국의 수도 타슈켄트로 출발했다. 중앙아시아를 향해 가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가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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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교민 집중 지원/관계 정상화 발맞춰 「대책반」 설치
◎2백50만명 희망사항 파악나서/한글교육ㆍ모국방문등 적극추진 정부는 한소수교가 눈앞에 다가오고 북경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됨에 따라 이들 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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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한인 1세기|한국계 「브류트 김」이 쓴 이민사 (2)
연해주의 광할한 대지 위에서 조선인들은 거주지를 형성하고 처녀지를 개간해 나갔다. 1910년 연해주에는 1백여개의 조선인촌이 생겼으며, 주민 수는 5만명을 넘어서 있었다. 이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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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억류된 망향 40년|일기자가 본 타시켄트 한국인촌
【동경=조동오특파원】최근 소련의 지방을 여행한 일본 마이니찌(매일)신문 모스크바주재 특파원 요시오까(길강충웅)씨는 중앙아시아의 소련땅 타시켄트에서 약 40년전 강제로 소련에 끌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