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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75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일성 반탁자들 구속ㆍ추방/김구의 탁치반대에 불만 임정 좌파 탈퇴 이남과 이북은 모든점에 있어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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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국정의 본산 「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농지개혁(2)|
농지개혁바람은 농촌질서를 헝클어 놓고 있었다. 정부 수립 후에도 좌익은 대지주들의 농지몰수를 계속 선동했다. 지주들은 개혁으로 입게 될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려했다. 지주와 소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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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농지개혁(1)
농지개혁은 광복을 실감케 한 최대의 변혁이었다.「농토는 농민에게」라는 개혁의 방향은 시대적 추세고 물결이었다. 그렇다해도 이 개혁은 수백년을 지탱해온 농지제도를 근원적으로 바꿔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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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3)|제31화>내가 아는 박헌영-성시백의 영향
47년5월에 남파된 성시백이 50년5월10일 ,검거될 때까지, 서울에서 벌인 그의 활동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평가될 것이지만 그의 풍부한 정보계통에서의 경험 등으로 수준급 이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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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미·소 공동 위원회 (14)|문제안
공산당의 성명은 ①민족 통일 본부 같은 것은 통일 공작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②입법 기관에 참여하기 위한 합작자도 합작을 파괴하는 자다 ③합작의 목표는 통일 민주 정권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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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영친왕은 천일파이니까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없다는 진정서가 미 군정청에 들어갔을 무렵, 그와 때를 같이하여 당시 입법의원에서는 「반민법안」을 상정하고 누가 민족반역자이고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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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이것은 8·15해방 후 미군정 때의 일이다. 당시 입법의원에서는 반민 법안을 상정하고 누가 민족반역자이고, 아닌 것을 토의하였는데, 하루는 박건웅이라는 의원이(그후 이북으로 간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