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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한·일·중 관계사 재조명|일 도요토미 정권·명 몰락 불러|종전과 전후처리
왜란의 종결은 히데요시의 유언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군의 패주로 종결된 것이다. 이미 1592∼93년 침략전쟁으로 왜군은 막대한 병력손실을 입었고(가등군 1만은 5천4백여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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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난의 대패" 역사는 일제가 조작|사학자 허선도씨 주장
임진왜난 (1592년4월∼1598년11월)에 대한 우리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지난 13∼14일 임진왜란을 집중조명한 단국대동양학연구소의 동양학학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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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당시 최대혈전지 남원성전투상황 한눈에
임진왜란중 최대 혈전의 하나였던 남원성 전투의 일본측 작전도가 나왔다. 그린이는 당시 이 전투에 참전했던 왜군 「가와까미」(천상구국). 일본 녹아도도서관에 묻혀있던 것을 최근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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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의병장 석상용의 투쟁그린 기념비 지리산서 발견
일제통치의 서술이 시퍼렇던 1921년, 당시 망국의 통분을 머금고 세상을 떠난 한의병장의 기념비가 지리산산중에 세워진 사실이 밝혀져 비상한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비가 세워진 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