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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좌담 「혁명없는 민주화」빨리 정착시켜야
-송진혁논설위원(사회)=6·29선언이 발표된지 어느덧 1년이 흘렀읍니다. 그동안 직선제개헌·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등 정치적 격변을 겪었으며 오늘의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6·29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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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충격」만으로 족하다
민주화란 어느 의미에선 권위주의시대의 고정관념과 금기를 깨는 과정이다. 그러한 금기는 제도나 힘에 의해 강제된 것도 있고 오랫동안의 권위주의적 관행에 의해 길들여진 것도 있다.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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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변화에 강력한 열망 표출
의식조사란 여론이라는 집합적 심리의 파악을 위한 한가지 방법이다. 이번 중앙일보의 의식조사는 이같은 일반적 취지 이외에 우리 현대사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6월사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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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제조항 양측 단에 이견
여야개헌협상의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양당의 창구들은 협상의 구체적인 방법·기구·시한 등에 관해 서로의 의중을 타진하고 있으며 그와함께 각당 개헌안의 윤곽이 밝혀지고있다. 민주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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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에 있어서의 보수와 혁신 현대사회연 토론요지|「보혁공존」엔 이념의 유연성 필 요|현대사회연 토론요지
「한국정치에 있어서의 보수와 혁신」에 대한 주제발표와 토론이 지난 14일 현대사회 연구소주최 대토론회에서 있었다. 다음은 그요지. ◇주제발표 ▲송복(연세대·한국의 사회발전과 이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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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백지상태 출발」 진의 밝히라"
▲김형래 의원(신민) = 5년 전 대통령 취임당시 전쟁과 빈곤·정치탄압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3대 공약을 했는데 집권 후반기인 오늘, 그 실천상황은 어떠한가. 정부는 동장이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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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자유당과 내각(21)
『철기(이범석씨의 아호)가 내무장관시절「무초」주한미국대사를 구타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철기는 초대총리때부터「무초」와 사냥도 함께 다니는등 가깝게 지냈고, 또「무초」대사는 독신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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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정산 늪에 빠져 아직 허우적
80년대는 격동과 급변의 시기였다. 「80년의 봄」으로 잠시 찾아왔던 정치적 자유는 군부개입으로 좌절됐지만 5공화국의 권위적 통치도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이로인해 80년대 후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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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내각의 태동|국정의 본산 「세종로1번지」34년…명멸했던 주역들은 증언한다|정당정치·거물급총리 기피한 이대통령|인촌에겐 "재무장관 맡아달라" 교섭
중앙청시대는 이승만정부 탄생으로 그 막이 올랐다. 이박사는 온국민의 선망속에 조국에 돌아와 건국을 이끌어 중앙청의 중심된 자리를 맡았다. 그로부터 l2년뒤 그는 국민의 미움이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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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각 국의 예방장치
역사적으로 한 사회와 국가의 부패는 작게는 집권 세력의 붕괴로부터 크게는 그 사회와 국가의 몰락을 초래했다. 때문에 어느 사회고 존재 자체의 사멸을 막기 위해서도 부패 추방 노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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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한국의 정치 그 풍토와 「모럴」
도덕적 규범의 제재 없이 힘만이 난무했던 우리 정치 사회에 있어서는 정치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 태도가 비관주의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민주주의가 우리에게는 하나의 「유트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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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종합지
71년은 선거의 해이다. 여야당이 선거전열을 정비하고 여당과 야당이 각기 연두기자회견을 통하여 선거 이슈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 달의 종합지는 이 시류에 편중하여 정치와 외교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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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우리의 미래상을 탐구하는 67년의 캠페인|헌정의 대도 - 한동섭
1, 전사적 고찰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은 한국 국민이 처음으로 가져본 근대적 헌법이었다. 선진적 입헌주의 국가인 서구 제국과 미국 등이 이미 18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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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상 ④|정치현실(하)
『여·야는 최소한의 「컨센서스」(합의점) 위에서 정치를 해야한다. 여당은 독주하고 있고 야당은 야당대로 본질과 명분은 야당대로 본질과 명분을 찾는 게 아니라 반대를 위한 반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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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전망한 신춘 정국
▲사회=바쁘신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지고 보면 정치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대가나 당의 영수보다는 당을 밑받침하고 있는 신진 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