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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조선 연합군 피 물든 사르후전투, 누르하치 ‘굴기’의 발판
━ [윤태옥의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대청제국의 기원 누르하치가 1621년 수도로 삼은 랴오양성의 동쪽에 건설해 자신의 치소로 썼던 동경성. [사진 윤태옥] 변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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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충기의 긴가민가] 김훈 집필실의 철가방과 저울
혹시 궁금한 분들 있을까봐, 밑줄 좌악 6가지 1. 기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 내키는 대로 쓰지만 취재한 사실만 쓴다. 2. 글 중의 삽자루는 필자 별명. 주말농장 오래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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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실리 외교 정책과 북방 영토 확장
【총평】 ? 조선은 건국 직후 진취적인 자세로 영토 확장 정책을 추진했다. 태조 때 정도전이 요동 지역을 회복하려는 요동 정벌 계획을 추진하여 명과 갈등을 빚었지만, 정도전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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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창간 9주년 특집 : 한국사와 좀 더 가까이!
중앙SUNDAY는 과거 연재했던 인기 역사 기획 내용을 토대로 현행 한국사 8종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고, 실전 문제까지 풀어보는 새로운 형식의 역사 NIE를 매주 홈페이지(ht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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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현실을 보고도, 소현과 봉림 두 형제의 꿈은 달랐다
북정일기(57Χ90㎝) : 1658년 제2차 나선 정벌에 참전한 신류 장군의 조총부대는 흑룡강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쳤다. 이후 러시아군은 청?러 국경 지대인 흑룡강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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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갔지만 신하를 설득 못 한 군주의 비극
광해군은 즉위 후 대동법을 시행해 민생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큰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대동법 시행비. 작은 사진은 대동법 시행세칙을 담은 호서(충청) 대동사목.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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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근대를 말하다 : 요약 ⑮
길림성 정협문사자료위원회 등에서 편찬한 『길림조선족』(1994)은 청나라 장봉대의 『장백회정록』(1909)을 인용해 “광해군 때 강홍립의 조선군이 청나라에 투항한 이후부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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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시대를 앞서갔지만 신하를 설득 못 한 군주의 비극
아무리 좋은 정책도 주위의 뒷받침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광해군은 당시 명나라를 성리학적 관점이 아니라 현실적 관점으로 바라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이런 외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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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事思史: 조선 왕을 말하다] 시대를 앞서갔지만 신하를 설득 못 한 군주의 비극
조선 후기 김후신(金厚臣)이 그린 양수투항도. 강홍립이 후금에 투항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충렬록(忠烈錄)』의 일부분이다. 사진가 권태균 임진왜란 이후 명 사신들의 태도는 이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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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해외 파병
우리 역사상 최초로 외국에 군대를 보낸 것은 통일신라시대 헌덕왕(재위 809~826년) 때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819년 신라는 당(唐) 헌종의 요청으로 운주(지금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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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파병
명분과 실리. 파병(派兵)만큼 둘 사이를 저울질하는 것도 별로 없다. 명분에 목숨을 건 이가 최명길이다. 병자호란 직후인 1637년 9월, 청 태종은 5000명을 파병하라고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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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의 외교술:명분과 실리 사이 절묘한 줄타기
역사는 과연 반복되는가? 위의 이야기는 광해군이 왕으로 있던 1618년 겨울의 '한반도 상황'이고, 밑의 이야기는 새 대통령 당선자가 출현한 2002년 겨울의 '한반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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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부대 홍천에 진격
MBC-TV『조선왕조 5백년-남한산성』(24일 밤 9시45분)-강홍립이 이끄는 3만명의 후금대군은 홍천까지 진격하고 인조는 장만을 평안도에 급파한다 평안감사 유훤을 찾아온 남이홍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