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사람들

파평 윤씨와 얽히고 설켰다…"尹지킨다"는 정진석

  • 1960년 9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4대조 할아버지가 임오군란 시기 관직을 버리고 공주에 터를 잡은 후 줄곧 공주에서 일가를 이루며 살아왔다고 한다. 정진석은 성동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1999년 김종필(JP)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의 특보로 정치에 입문한 후 제16대 총선에서 자민련 소속으로 충남 공주·연기에 당선돼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중앙포토


    제17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으나, 이듬해 열린 재·보궐 선거를 통해 재선 국회의원의 자리에 올랐다. 제17대 국회에 합류한 후 한때 충청 중심 정당인 국민중심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제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지내다 2010년 이명박(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을 거쳐 제20대 총선 때 국회의원으로 돌아왔으며, 21대 총선에서 충남 공주·부여·청양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현재 당내 최다선(5선)으로 제21대 국회 부의장을 맡고 있다.


  • 부친은 6선 국회의원과 제43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남당(南棠) 정석모(鄭石謨, 1929~2009)다. 그는 자신의 모교인 계룡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고, 경찰 간부 후보생을 거쳐 서울시경 경무과장, 전남‧경남도경 국장, 부산시경 국장, 내무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을 역임했다. 이후에는 도지사(강원도지사 1차례, 충남도지사 2차례)를 지내다 내무부 차관에 올랐다. 박정희 대통령 권유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제10대 총선에 출마해 첫 배지를 달았다. 제12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에는 내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6선을 지낸 뒤 2000년 제15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 은퇴했다.


    @중앙포토


    작고한 정진석 추기경은 동명이인인 정진석 의원과 같은 동래 정씨로 두 사람은 31대손 형제지간이다. 정진석도 천주교 신자여서 정 추기경과 종종 만나 안부를 묻곤 했다고 한다. 2021년 4월 정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명동성당을 찾아 직접 조문하기도 했다.


    모친 윤석남씨는 파평 윤씨 종갓집 후손으로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직계다. 윤증이 평생 벼슬에 있지 않고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충청 일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파평 윤씨 문중도 충청에 터를 잡아 살아왔다.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고택이 정진석의 외가다.


    @중앙포토


    정진석의 처가 역시 남부럽지 않은 명성을 자랑한다. 부인 이미호씨는 국내 최대 면방섬유기업으로 이름난 충남방적의 창업주이자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청운(靑雲) 이종성(李鍾聲, 1924~1995)의 차녀다. 이종성 충남방적 회장은 제11대 총선에서 충남 청양‧홍성‧예산 지역에 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국민당 부총재를 지냈다. 제12대 총선에서 재선에 도전한 이 회장은 홍성에 후학 양성을 위한 학교 설립을 공약했는데, 낙선했음에도 청운대와 혜전대를 세워 약속을 지켰다(학교법인 혜전학원). 이밖에 도지사를 네 차례(전남도지사 1차례, 전북도지사 1차례, 충남도지사 2차례) 지낸 우와(又窩) 이기세(李埼世, 1903~1990)가 정진석의 처조부다. 이기세 전 도지사는 공주군청에 근무할 당시 정진석의 할아버지와 호형호제할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 부친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과 김종필 총재는 학창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같이 공주중학교를 나왔는데, 입학은 김 총재가 정진석의 부친보다 1년 먼저지만, 학제가 5년제에서 4년제로 바뀌면서 같은 해 졸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정치인이 돼서도 이어졌다.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이던 부친과 민자당 대표였던 김 총재는 탈당해 충청 중심의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기로 했는데, 당시 기자였던 정진석은 두 사람 사이의 가교 구실을 하며 자민련 창당에 공헌했다. 특파원 시절인 1995년 1월 미국 포틀랜드의 한 대학교에 명예박사 학위를 받으러 온 김 총재와 만나 “김영삼 대통령의 권유에도 흔들리지 않고 충청 정당을 만들겠다”는 부친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진석 SNS 캡처


    ‘김종필-정석모’의 정치적 인연이 ‘김종필-정진석’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진석은 귀국 후 김 총재 담당 기자가 됐다. 그리고 1999년 김 총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던 정진석을 ‘김종필 자민련 총재 정치특보’로 영입했다. 정진석이 자민련 대변인을 하던 2002년 김 총재는 정진석에게 직접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려 줬다. 당시만 해도 성격이 급하다는 평가를 받던 정진석에게 매사에 여유롭게 대처하라는 의미로 내려준 것이다. 지금도 정진석은 의원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 휘호를 걸어놨다. 정진석은 “김 총재 문하에서 정치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며 “지금도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 김 총재의 가르침을 떠올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