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기준이 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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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이름 하나가 시린 허공을 건너와 메마른 내 손등을 적신다’(김용택의 『첫눈』).

 첫눈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잊었던 첫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올해는 서울의 첫눈을 놓쳤다. 첫눈은 13일 밤 슬그머니 내렸다.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려 다음 날 아침엔 흔적도 없었다. 지난해보다 9일이나 이른 방문이었다.

 당시 경복궁 인근 등 서울 일부 지역은 오후에 눈발이 날렸다. 하지만 오후 10시55분쯤 종로구 송월동에 내린 눈이 공식적인 첫눈으로 기록됐다. 송월동의 서울기상관측소 관측자가 직접 봐야 눈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강남에 폭설이 내려도 송월동엔 안 온다면 눈으로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폭설이 내릴 정도의 눈구름이 강남에만 형성될 가능성은 낮다고 한다.

 또 영화처럼 펑펑 내려야만 눈은 아니다. 진눈깨비라도 눈발이 육안으로 확인되면 눈으로 기록된다. 관측자들은 교대근무를 하며 24시간 하늘을 바라본다. 눈이 예상되면 아예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도 한다.

 이쯤에서 드는 걱정 하나.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이와 승민이처럼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했던 연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전국 40개 관측소 가운데 첫눈이 기록된 곳은 15곳뿐이다. 첫눈을 놓쳤다면 장소를 옮겨 약속을 다시 잡는 게 어떨지. 주말엔 대체로 맑고 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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