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밀어붙이기는 곤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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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대원제약(경기도 화성)은 경영진.종업원 모두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2백70여명의 종업원 급여를 종전대로 주면서도 업무효율은 높아져 경영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게 회사측 설명. 근로자들은 "주말에 2박3일 가족 여행도 가는 등 정서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며 반긴다.

하지만 주5일 근무제 도입이 이처럼 순탄하기만 하다면 온 나라가 이 제도 도입을 둘러싼 찬반 양론으로 들끓을 리 만무하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금도 어려운데, 토요휴무제까지 도입되면 한국에선 더 이상 사업을 할 수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대부분 주5일 근무제를 찬성하지만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경기도 부천의 전자부품업체 S사에 근무하는 崔모(38.여)씨는 "주5일 근무제가 도입돼도 업종 특성상 토요일이라고 쉬진 못할 것" 이라며 "학교도 주5일 수업을 할 것이고, 그러면 맞벌이 부부인 우린 토요일에 아이를 맡길 곳이 전혀 없다" 고 말했다. 시간외 근무 수당을 조금 더 받는다는 게 하나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용자는 반대, 근로자는 찬성' 이라는 이분법으로 보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노사가 모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업체도 많으며, 한 직장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등 천태만상이므로 대책도 이에 따라 세심하게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조하현(경제학) 교수는 "각 기업이 처한 실정에 따라 노사가 협의해 도입 여부와 시기를 알아서 정해야 한다" 며 "기업 규모와 업종 등도 고려해야 하며 정부 방침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획일적.일률적 시행은 곤란하다" 고 말했다.

◇ 업체마다 사정 달라=대한상공회의소의 박형서 경영조사팀장은 "기업체 설문조사를 해봐도 주5일 근무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실로 천차만별" 이라고 말했다.

▶업종과 회사규모▶남녀.생산직 비중▶생산직의 업무 교대 수▶관청.은행 업무의 많고 적음 등에 따라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른 명암이 크게 엇갈린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 근로자들끼리 입장이 다른 경우도 있다. H건설 관계자는 "본부 지원부서 직원들은 주5일 근무제를 찬성하지만 현장 일용직은 소득이 준다고 야단" 이라고 말했다.

회사 특성상 주말근무가 불가피한 기업일수록 이에 비례해 걱정도 많다.

임직원 1천3백명의 설계감리 회사인 유신코퍼레이션은 월 평균 1억2천여만원씩 나가는 초과근로 수당이 더 늘 것을 걱정했다.

신두철 노무부장은 "관공서 업무나 단기 프로젝트가 많아 토.일요일 근무가 많은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이 네시간(주 44시간→40시간) 줄면 1.5배 임금을 줘야 하는 초과 근로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 고 말했다.

건설현장이나 운수업.도소매업 등 야간.휴일근무가 많은 서비스 업종도 사정은 비슷하며, 석유화학.반도체처럼 공장을 24시간 돌려야 하는 업체들도 우려하고 있다.

부산의 설비부품 회사인 태광밴드공업은 수출 납기를 맞추느라 특근이 많은데 유석곤 총무부 차장은 "평일에도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연장근로를 하는 터에 초과근로수당 부담이 늘 것이 뻔하다" 고 말했다.

◇ 업종별.회사 규모별 대비책 필요=중소기업들은 '10년 정도 도입을 미뤄달라' 는 건의를 최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통해 정부에 했다.

노동집약 업종이 많아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주당 44시간)보다 10시간 가까이 많기(53.5시간) 때문에 타격도 클 것이란 주장이다. 대기업들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담담하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대기업 생산현장은 3조3교대 또는 4조3교대의 대규모 장치산업이 많아 2조2교대를 많이 하는 중소기업이나 노동집약적 업종보다 충격이 덜하다" 고 말했다.

유한킴벌리는 4조3교대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공장 자동화율을 높이고 제조원가 대비 인건비 비중을 낮춤으로써 주5일 근무제에 대비했다.

중소 제조업체보다 사무직 비중이 크다는 점도 생산성 향상을 이루기 쉽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 대기업들도 그러나 휴일이 늘어나는 문제 등에 따른 보완책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승일.김남중.이현상 기자 hong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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