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없이 뚫린 3중 철책…4성 장군의 값싼 눈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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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 장군의 눈물이 화제다. 박성규 육군 1군사령관은 지난 12일 이른바 ‘노크 귀순’의 진상 파악을 위해 강원도 원주시 1군사령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 국감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는 것을 알고 경계해 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 3중 철책을 과신했다.” “이 시간에도 혼신을 다해 근무하는 병사들과 부하들에게 미안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군사 격언에 ‘전투에서 패한 장군은 용서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바로 그런 부끄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군 병사가 강원도 22사단의 전방 3중 철책을 뛰어넘어 수백m를 아무 제지 없이 다니면서 우리 군이 그토록 자랑하던 철통 경계망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2010년 이후 20여 건의 경계 실패 사례 대부분이 22사단에서 집중 발생했는데 또다시 뚫린 것이다.

그렇다면 박 장군은 부하에 대해 미안함 운운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사과와 책임의 발언을 해야 마땅하다. 한 전직 장군은 “전우애 때문에 울었다는 건데 무슨 한심한 행태냐. 마땅히 ‘내 목을 치라’고 해야 했다”고 흥분했다. 다른 예비역 장성도 “울면서 전쟁할 건가. 4성 장군 자격이 있나”라고 질타한다.

경계 실패는 22사단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지난 9월엔 서부전선 강화도에서 탈북자가 해안 감시망을 뚫고 들어온 것을 군 당국은 엿새나 몰랐고, 역시 서부전선에서 2008년 북한군 장교가 철책을 넘은 것도 즉각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도 철책 GP에서 근무를 서거나 비무장 지대 매복에 들어가는 병사들 사이엔 ‘근무 중 몰래 잔다’는 게 무용담처럼 떠돈다. 앞보다 뒤를 더 경계하면서 말이다.

느슨해진 군 기강의 문제는 사병이나 장교 할 것 없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훈련병들이 입대 때 필수품으로 사제 위장 크림을 가져가고, 병사들이 내무반 동료의 땀 냄새를 못 견뎌하며, 보안엔 아랑곳없이 스마트폰으로 군 시설을 찍어 외부로 보내는 행위들이 멈추지 않는다. 초급 장교들 사이엔 소대장을 지낸 뒤 부관으로 가거나 유학을 가는 게 출세의 지름길이란 생각이 퍼져 있다고 한다. 부대 지휘관들은 사병들이 인터넷에 뭔가 나쁜 소리를 올릴까 소심해져 있는 실정이다. 이제 군인다움이란 말은 구시대의 흔적으로 사라질 판이다. ‘열린 군대’라는 명분 아래 전투력이 희생되는 현실을 방치해야 하는 건가.

대한민국 장군이라면 예컨대 천안함 사태로 사망한 46명 장병을 기리는 장소 같은 데서 그것도 절제된 눈물을 흘려야 한다. 값싼 눈물은 군 전체 사기에 해를 끼친다. 수십조 예산을 투입해 최첨단 스텔스와 이지스함, 막강 탱크를 배치한들 유약한 리더십 아래에서 강군(强軍) 육성은 요원할 것이다. ‘노크 귀순’의 책임자를 찾아내 엄벌하는 것 못지않게 강군에 걸맞은 군 기강과 장교 육성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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