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랏차차, 소비자파워… 이 차는 변속기 바꾸고 저 차는 리콜 해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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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지난 2월 3일 서울 한남동 랜드로버코리아 본사 앞. 이 회사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온 30여명의 동호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인터넷을 통해 모인 '랜드로버 오너스 클럽'의 동호인들이다. 이들은 "회사 측에서 마케팅 비용을 제대로 쓰지 않아 브랜드 인지도가 다른 수입차에 비해 떨어진다"며 "이 때문에 중고차 가격이 폭락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부품 가격 역시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싸다"며 가격 리스트를 제시했다. 회사 측은 즉각 "올해 광고 물량을 늘리고 부품 가격에 대해서도 재조사하겠다"고 해명했다.

이달 초에는 인터넷 동호회인 '뉴(NF )쏘나타 클럽' 회원들이 모였다. 새로 산지 6개월도 안 된 뉴 쏘나타의 일부 차종에서 급가속할 때 검은 매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차에 문제를 제기했고 최근 회사 측은 "급가속할 때는 고급 수입차도 매연이 나오지만, 뉴 쏘나타의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체크해 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동호회 관계자는 "불과 5~6년 전만 해도 회사 측이 응대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호회에서 자체 비용으로 외부 기관에 매연 측정을 의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품질에 동일한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동호회를 만들고 공동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에겐 무시할 수 없는 새로운 파워다. 이들은 리콜 추진 카페를 만들거나 집단 시위를 벌이면서 자동차의 최종 품질을 확인하는 '품질지킴이' 역할까지 하고 있다.

?점점 커지는 소비자의 힘=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자동차 품질 문제가 생겨도 기술 지식이 모자라는 데다 해당 업체를 상대로 의견을 내기 어려워 전적으로 소비자보호원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소보원도 기술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장비가 부족해 품질 문제를 판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이들 동호회는 회사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타당한 설명이 없을 경우 시위에 나서거나 소송을 내기도 한다. 현재 100여개의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지난해 기아차의 SUV인 쏘렌토의 5단 자동변속기 리콜도 동호회가 이뤄낸 성과다. 5단 자동변속기를 단 쏘렌토는 후진할 때 차량이 밀리는 등 문제점이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지난해 3월 '2004년식 쏘렌토 미션리콜추진카페'를 만들어 대응했다. 동일한 문제를 느낀 소비자 2만여명이 일주일 만에 모였다. 회원들은 한 달 동안 기아차 측에 문제 해결을 건의했고 이후 석 달 만에 리콜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문제점이 나타나자 회원 2000여명이 모여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달 나온 GM대우차의 뉴 마티즈도 소비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소비자들이 변속할 때 충격이 생기는 문제를 지적하자 회사 측은 기존 CVT자동변속기 대신 4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지난해 네티즌들이 모여 한바탕 거센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소비자 의견 수용하는 업계=현대차는 동호회 활동이 거세진 데다 사이버상에 품질 불만 사항이 많이 올라오자 올해 초 '사이버 홍보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소비자의 불만을 수시로 체크해 관련 부서에 연락하고 네티즌에게 적극 해명하고 있다. 인터넷 전문가인 아이네트호스팅 신중현 사장은 "일본차가 세계 최고의 품질 수준에 올라선 데는 소비자가 품질 불만에 적극 대응한 것이 큰 힘이 됐다"며 "국내 자동차 업체들도 이런 동호회를 최종 품질 점검자로 생각하고 잘 응대하면 국산차 품질도 세계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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