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 福魚?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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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34면

매주 복권을 사는 친구가 있었다. 번번이 떨어졌지만 그는 매주 만원을 주고 복권을 샀다.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내가 그를 비웃으며 복권의 당첨 확률이 고작 814만분의1이란 사실을 지적하자 그가 한 말이 이랬다. “맞아. 내가 부자가 될 확률이 복권을 사면 814만분의 1이라도 되지만 안 사면 0이니까.” 얼마 전에 나는 처음으로 로또복권을 샀다. 물론 당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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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11번 출구와 12번 출구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 50m 정도 올라가면 왼쪽에 수줍은 듯 길에서 한 발짝 물러선 둥굴관이란 복집이 있다. 그곳을 찾는 직장인은 주로 점심에 복매운탕을 먹는다. 복매운탕에는 콩나물이 잔뜩 들어간다. 팔팔 끓을 때 건져내 고춧가루와 참기름, 다진 마늘 같은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데 그 콩나물 무침 맛이 근사하다. 맵고 고소하고 쌉싸름한 양념 맛도 좋지만 통통하게 살이 오른 콩나물을 씹을 때 나는 아삭아삭 소리는 마치 음식을 귀로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콩나물 무침을 다 먹을 때쯤 되면 식초를 세 바퀴쯤 두른 복매운탕이 먹기 좋을 정도로 끓고 있다. 함께 들어간 미나리 때문인지, 식초 때문인지 시큼하고 씁쓰름한 국물 맛이 시원하다. 물론 복도 맛있다. 주방이나 홀이나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친절하고 싹싹하다. 복을 주는 사람들인 것이다.

식당을 나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복을 한 그릇 먹었으니 복을 받은 셈인데, 이럴 때 복권을 사는 게 좋겠다고. 나는 난생 처음 편의점에 들러 복권을 산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죄를 짓는 일도 아닌데 어쩐지 복권 사는 것이 부끄럽고 떳떳하지 못하다. 나는 아무도 없을 때를 기다리느라 공연히 편의점 안을 왔다갔다 한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계산대 쪽으로 가면 불쑥 누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오고 또 들어온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복권을 산다. 이쪽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저쪽도 알 텐데 아르바이트생은 편의점 안의 사람들이 다 듣게 큰 소리로 묻는다. “손님, 복권 얼마큼 사실 건가요?” 나는 모깃소리로 속삭인다. “5000원만큼 주세요.” 돈을 내고 복권을 받으면서 나는 조심했지만 그만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친다. 젊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모습은 희망이라고는 복권밖에 걸어볼 데가 없는 한심한 중년일 테지. 하긴 나도 내가 한심하다.

결국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행복했다. 아내나 동료에게 들킬까 봐 지갑 속 깊이 숨겨둔 복권을 혼자 있을 때 몰래 꺼내보면서 나는 쓸쓸하고 행복했다. 거기 있는 숫자들이 나를 구원해 줄 것 같았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둘째치고 그 돈을 어떻게 받으러 가야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벌렁거리고 숨이 가쁘고 어지러웠다. 마치 복의 독에 중독된 것처럼 말이다. 복에는 독이 있다.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복은 더 맛있는지 모른다.

복매운탕의 반찬으로는 간장에 절인 양파와 삶은 오징어, 그리고 역시 삶은 풋콩과 브로콜리가 나오는데 하나같이 맛있다. 당신이 애주가라면 시원한 맥주 한잔 생각이 간절하게 날 것이다. 나처럼 지난주 산 복권이 당첨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말이다. 조만간 친구와 함께 복매운탕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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