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라이 실각 그 후 … 중국 충칭시 가보니 <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충칭시의 최대 상가 밀집지역인 완성구 완둥베이루 거리. 지난달까지 거리 입구 주위에 있던 3개의 교통순찰초소는 현재 모두 철거되고 없다. [충칭=최형규 특파원]

11일 오전 중국 충칭(重慶)시 치장(?江)구에 위치한 상지(尙基) 부동산개발사.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실각 이후 주민들의 반응을 취재 중인 기자에게 정리(鄭力·67) 주임은 대뜸 “시 정부에 불만이 있다”고 했다.

 중경신문(重慶新聞)TV가 매일 오전 7시30분에 내보내는 ‘혁명가요 부르기(昌紅)’ 프로그램을 4월 중순 없앤 것은 잘못됐다는 거였다. 충칭 시내 다른 5개 케이블 TV도 매일 두세 차례씩 2~3분 동안 내보내던 이 프로그램을 없애거나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였다. 보 전 서기가 추진했던 창훙다헤이(昌紅打黑·혁명가요를 부르고 범죄조직을 소탕한다) 정책을 지우기 위한 시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정 주임은 “혁명세대인 나에게 훙거(紅歌·혁명가요)는 일상생활인데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시정부에 대책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환영이다. 충칭대학 쉬리위안(徐麗淵·컴퓨터공학과)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 문화혁명을 연상케 하는 혁명가요를 21세기에 꼭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3월 보 전 서기가 면직되면서 충칭에선 ‘보시라이 지우기’가 진행 중이다. 그의 흔적 지우기는 인맥 제거부터 시작됐다. 충칭 시 공안당국은 올 1~4월 공직자 453명을 뇌물수수 등 혐의로 사법처리했다. 이 중 3월 중순 이후 사법처리된 공직자 200여 명 대부분이 보 전 서기와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이다. 여기에는 보 전 서기에게 수십억원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난안(南岸)구 샤쩌량(夏澤良) 서기와 자진밍(賈金明) 푸링(?陵)구 공안국장 등이 포함돼 있다. 보 전 서기와 호흡을 맞췄던 황치판(黃奇帆) 충칭시장의 거취도 관심거리다. 충칭 시정부의 한 관계자는 10일 “충칭의 차기 서기를 선출하기 위한 당 대회가 이번 달에서 다음달 18일로 연기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황 시장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것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산주의 혁명이념에 충실하기 위해 보 전 서기가 금지했던 TV상업광고는 최근 허용됐다.

 11일 오후 충칭시 중심에서 70여㎞ 떨어진 옛 완성(萬盛)구 완둥베이루(萬東北路) 입구. 구 최대 상가가 몰려있는 이곳 주변에는 지난달 초까지 3개의 교통순찰초소(交巡警平臺)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철거됐다. 초소는 경찰이 24시간 근무하며 교통정리와 치안을 담당하던 곳으로 보 전 서기가 범죄와의 전쟁을 위해 설치를 지시했다. 이 거리에서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중위웨이(仲玉維)는 “가게 옆 초소 덕분에 치안 걱정을 안 했는데 최근 소리 없이 초소가 사라져 불안하다”며 “다시 복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충칭 시내 500여 개의 교통순찰초소가 지난 한 달 동안 조금씩 사라져 현재 100여 개가 철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안당국은 여론이 좋지 않자 초소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10일 밝혔다.

 식당도 예외가 아니다. 보 전 서기가 위생을 위해 충칭의 대표적인 요리인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 요리)에 쓰는 국물의 재사용을 금지했으나 최근 시 정부가 재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이(北)구에 있는 충칭훠궈의 두딩(杜丁) 부총경리는 10일 “국물은 재사용해도 항상 끓이기 때문에 위생에 큰 문제가 안 된다”며 “시가 재사용을 허용할 경우 원가를 10% 정도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며 기뻐했다.

충칭=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