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조심 산업스파이] 허술한 연구소…대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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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대전 대덕단지의 한 정부출연 연구소. 중앙일보 취재팀이 차를 타고 정문을 통과해 연구소 본관으로 가는 동안 한번의 제지도 없었다.

경비원 두 명이 정문에 서 있었지만 '프리패스' 였다. 사정은 다른 연구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문에서 검문하는 경우도 모 기관에서 "조사 나왔다" 고 둘러대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연구소는 지금도 아무 때나 잡상인들이 무상출입하게 방치하고 있다는 게 국정원측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국가.민간 보안 시스템을 전면 점검할 때가 왔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책연구사업의 보안 강화와 법적 장치를 구비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 2선으로 밀린 보안=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기업부설 연구소 3백79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2.9%가 지난 3년 동안 기밀 유출로 인한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이를 방증하듯 보안규정과 보안담당자를 갖춘 연구소는 47.2%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래서 기업체 보안까지 전적으로 국정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정보를 빼내기 위해 금품은 물론 미인계까지 동원하고 있다" 며 "그러나 우리는 보안조직 운영을 돈낭비라며 축소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 법적 장치 강화가 1차 과제=간첩 잡기에는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군형법 등 이중삼중으로 법이 있으나 정작 산업스파이를 잡는 법은 없는 실정이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 을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형량(5년 이하 징역.5천만원 이하 벌금).처벌 범위 등이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미흡하다.

1996년 '경제스파이 처벌법' 을 제정한 미국의 경우 잘못 걸리면 징역 15년, 50만달러(법인은 1천만달러)의 벌금까지 각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처벌 범위를 대폭 넓혀야 법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법 적용 대상자도 '전.현직 임직원' 에서 '외국인.단체 및 제3자' 등으로 확대'하고, 누설 외에 사용.취득.은닉.미수.교사행위 등도 광범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 국책연구 보안강화 시급=국가연구개발사업의 해외 기밀유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게 국정원측의 설명. 사전.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출연 연구소의 한 30대 연구원은 " '투명성' 논리에 밀려 기밀사항까지 공표, 연구물을 경쟁국에 고스란히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국가가 추진하는 주요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연구원은 일정기간 해외 경쟁업종에 취업하는 것을 막고 있다" 며 "우리도 이 제도를 도입해야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 민간 스스로 보안 경쟁력 높여야= "유출된 기밀은 언제든지 부메랑이 돼 날아온다" 는 게 보안업계의 속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기업 스스로 보안 경쟁력을 높여가는 일이다.

출입통제.문서관리.컴퓨터 보안에 이르기까지 투자가 선행돼야 하고, 직원들도 보안을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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