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항운노조 '위원장 왕국' 무너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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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채용 비리.공금 횡령 사건으로 노조 설립 58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부산항운노조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합원 사이에서는 검찰 수사를 계기로 고질적인 부패고리를 끊고 민주적인 노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조는 개혁안을 마련하기 위해 업계.학계.노동계.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시민개혁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22일부터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노조 측은 "추진위는 노조가 추진하는 조직 개혁을 감시.감독하고 노무공급독점권 등 쟁점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우선 위원장 등 지도부를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로 바꾸고, 조합 예산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노조 규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노조는 노조운영위와 임시 대의원대회 승인을 거쳐 이른 시일 내 새 위원장 선거를 할 예정이다. 또 '클로즈드 숍(closed shop)' 형태를 포기할 것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클로즈드숍은 노조에 가입해야만 취업을 할 수 있어 사실상 노조가 채용권을 독점하는 셈이어서 채용비리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조합원들도 지도부가 새롭게 태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4부두에서 일하는 이모씨는 "뿌리 깊은 비리구조가 완전히 뽑혀 노조가 '위원장의 왕국'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8부두의 한 조합원은 "비리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현행의 클로즈드 숍을 근로자가 노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거나 최소한 입사 후에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하도록 하는 '유니언 숍(union shop)'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조합원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면 7부두 박모씨는 "박이소.오문환 등 전 위원장의 측근이 곳곳에 버티고 있는 이상 노조의 개혁은 시늉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부산=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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