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2, 게임기로선 실패작!

중앙일보

입력

워크맨이나 TV로 유명한 소니의 간판 상품은 사실은 게임기다. 소니의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플스)은 전세계적으로 1천만 개 이상 팔렸고, 일본의 경우 출시된 게임 타이틀의 50퍼센트 이상이 플레이스테이션용이었다.

올해 초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출시했다. ‘이모션 엔진’을 탑재해서 뛰어난 그래픽 처리 능력을 자랑하는 데다가 ‘플스 1’ 게임 타이틀과도 호환되고 DVD플레이어로도 사용 가능하다. 플스2는 일본에서만 올해 상반기 1백80만 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미국에서도 1차 출하분인 50만 대의 몇 배의 예약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실패한 게임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런 주장은 소니 내부에서도 있다. 그 주장의 근거로 드는 것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판매의 불균형이다. ‘플스 2’ 용 게임이 많이 있지만 제일 많이 팔린 게 60만∼70만 개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은 10만 개 이하다. 상반기에만 하드가 1백80만대나 팔린 것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계만 사놓고 게임 타이틀은 사지 않는다는 얘기다. ‘플스 2’를 저렴한 DVD 플레이어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고, 게임을 사더라도 ‘플스 1’ 게임 타이틀을 산다.

사람들이 ‘플스 2’ 타이틀을 사지 않는 건 게임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하드에 사용된 기술이 재미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 뛰어난 그래픽과 데이터 처리 능력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없다. 하드웨어 기술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드웨어 제작자들은 자신의 제품에 신기술을 끌어넣기 위해서 안달이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우선 재미있어야 하는 게임의 원칙

90년대 중반 32비트 게임기 시장에 세 회사가 뛰어들었다. 세가의 ‘새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그리고 NEC의 ‘PC-FX’는 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세가는 당시 크게 히트를 치고 있던 닌텐도의 16비트 게임기 ‘슈퍼 패미컴’을 벤치마킹했다. 발색수, 즉 한 번에 표현할 수 있는 색깔 수를 늘리고, 비디오 램 크기를 늘려 2D 처리 능력을 강화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새턴은 슈퍼 패미컴 시스템의 강화판 격이었다.

반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램을 작게 만든 대신 폴리곤 처리 능력을 강화했다. 화면에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2D 스프라이트의 볼륨은 줄었지만 3D 그래픽 표현 능력은 상승했다. NEC의 PC-FX는 애니메이션 처리 능력을 발전시켰다. 슈퍼 패미컴의 약점인 동적 연출의 한계를 애니메이션과 결합해서 해결하려고 한 시도였다.

제품의 차이는 업체가 지닌 비전의 차이였다. 새턴은 CD 매체를 이용한 연출 부분은 강화되지만 게임이 발전하는 방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NEC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결합이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소니만이 앞으로의 게임은 기존 게임과는 달리 3D 중심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는 소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플레이스테이션 성능이 좋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령 2D 스프라이트 사용이 가장 많은 슈팅 게임을 해보면 새턴이 플스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걸 알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은 하드에 사용한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 하드를 만드는데 기초가 된 비전의 승리였다.

플스 2는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플스 2에서는 비전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나 뛰어나서 뭘 맡겨도 다 처리할 수 있는 기기란 건 알지만 정작 이 게임기가 사람들에게 뭘 주기 위해 만들어졌는가는 느껴지지 않는다. 플스 2 게임을 하고 나서 흔히 하는 말이 ‘이런 게임을 왜 플스 2로 만들었을까’다. 그래픽은 굉장히 훌륭하지만 정작 게임에서는 전과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없다.

새로운 게임기에 걸맞는 새로운 게임성을 찾을 수가 없다.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해 ‘게임 큐브’를 개발하고 있는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은 ‘게임은 게임으로서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으로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밝히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고성능 머신임을 자랑한 데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중요한 건 하드에 채용된 기술이 아니다.

게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드웨어적인 기술 발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다. 내년 봄 출시될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 박스’에 대항하기 위하여 플레이스테이션 2의 파워 업 버전인 ‘플레이스테이션 3’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벌써 나오고 있다. 하드웨어는 기술의 무한 발전을 쫓아갈 수 없다.

게임기 제작업체는 새 기술을 열심히 게임기에 끌어넣으려고 한다. 게임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무한하게 넓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기술 발전이 중심이 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에게 재미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적 비전이다.

좋은 게임, 재미있는 게임은 좋은 게임기, 성능이 놀라운 게임기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좋은 게임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즐거워할지에 대한 비전, 그리고 그 비전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하드웨어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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