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천안박물관 안내 자원봉사 조덕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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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현씨는 “봉사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0일 천안박물관 2층 안내 데스크. 조덕현(67·사진)씨가 밝은 웃음으로 박물관을 찾은 어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린이 집 단체 관람객들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한 조씨의 안내를 받으며 제1 관람실(천안고고실)로 입장했다. 일주일에 이틀, 다섯 시간씩 박물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일이 조씨의 역할이다. 그는 벌써 3년 째 천안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조씨가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8년 8월 월봉고 교장으로 정년 퇴임한 직후부터다. 그 해 9월 개관한 천안박물관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역사과목 교사로 40여 년 동안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남들처럼 퇴임 이후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남은 여생을 나라를 위해 뭔가 봉사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년퇴임 후에도 생활의 리듬이 깨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 큰 행복을 느낀다.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면서 얼마든지 활기차게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며 “그런 연장선에서 볼 때 봉사활동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천안 박물관은 지방 도시로서는 규모면에서 거의 최고 수준의 박물관이다. 처음 개관했을 당시에는 하루 평균 700~800명이 올 정도로 관람객 수가 많았다. 상설 박물관 역사교실, 역사대학 등 시민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설해 사회교육에도 기여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무료 영화상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조씨는 천안박물관 개관 때부터 운영자문 위원장을 맡아 활동해 왔다. 천안박물관 작은도서관 명예관장도 맡고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직함은 바로 ‘천안박물관 자원봉사자 대표’다. 그는 “자원봉사를 하는 일은 여러 사람을 만나며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천안박물관 자원봉사자는 모두 67명. 평균 연령은 40~50대로 60~70대도 많다. 심지어 85세 최고령 자원봉사자도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관람객 안내, 질서 유지, 탁본 체험, 데스크 안내, 2층 안내 등이다. 각 파트별로 다섯 명씩 오전 오후로 나눠 하루 10명씩 봉사를 하고 있다. 조씨는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교직에 종사하셨던 분들이 많고, 천안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고급인력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자원봉사 접수 대기자도 20~30명이나 된다고 한다. 천안박물관의 도슨트(Docent) 김경숙(55)씨는 그를 가리켜 “연령을 불문하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아우르고 이끌며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분”이라고 칭찬했다.

 박물관에 처음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몸이 약해 그만 두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일이 익숙하지 않고 힘들어서 가끔 졸면서 앉아 있는 봉사자도 생긴다. 그는 봉사를 시작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두 시간씩 헬스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그는 “봉사 활동이야말로 건강해야 할 수 있는 일이며 마음만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라며 “봉사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섭섭하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박물관 관리팀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서면교육을 비롯한 전문 강사를 초빙해 친절교육을 한다. 어쩌다 자원봉사자 한 두 명이 관람객에게 서운하게 하면 모든 67명 자원봉사자들까지 뭇매를 맞기도 한다. 그는 “박물관에 와서 장난감을 대하듯 전시물을 함부로 만지는 어린 관람객들을 견제하느라 힘들 때가 많다. 이제는 적응이 돼 유연하게 대처한다. 자원봉사자들은 대인관계가 좋아야 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모든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은 교육 현장에서만 이뤄지는 일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부터 향토애를 가지면 나라사랑의 기본을 이룬다고 생각해왔다. 그는 역사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전당인 천안박물관에서 봉사하는 일이 자랑스럽다. 그는 “몸으로 체험하는 역사의식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다. 천안 박물관이 내 고장 향토역사를 체험하는 시간과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글·사진=홍정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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