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김정남 “한국은 공격 받아도 대응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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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10년 6월 6일자 1면.

지난해 12월 사망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41)이 친분 있는 일본인 기자와 주고받은 e-메일 150통의 내용과 인터뷰 뒷얘기가 담긴 책이 18일 일본에서 출간된다. 고미 요지(五味洋治·54) 도쿄(東京)신문 편집위원이 쓴 『아버지 김정일과 나』란 책이다.

 책에는 2010년 11월 23일 일어난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김정남의 언급이 나온다. 11월 25일 고미 위원에게 보낸 메일에서다. 김정남은 “한국은 공격을 받더라도 전쟁 확대를 막기 위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북한은 한국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언제 어디에서도 유사한 공격을 가해 올 것”이라고 썼다. 이어 “이번과 같은 일(연평도 공격)이 생겨 매우 걱정”이라며 “북한으로선 서해 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핵 보유, 선군 정치 등 모든 것에 정당성이 부여될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2011년 1월 13일 마카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정남은 북한의 핵 포기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는 “북한의 국력은 핵으로부터 나온다. 미국과의 대립 상황에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 핵 보유국이 외부로부터의 압력으로 핵을 포기한 전례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2008년 여름의 아버지 김 위원장의 뇌졸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정남은 “프랑스의 신경외과 전문의인 프랑수아 자비에르 루 박사를 2008년 부친이 쓰러진 뒤 찾아갔고, 이후 난 평양에 들어갔다”며 “그 직후 자비에르 박사가 평양에 왔으니 결과적으로 내가 (아버지의) 치료를 그에게 의뢰한 셈”이라고 말했다.

 고미 위원은 도쿄신문 서울특파원을 거쳐 베이징에 부임한 2004년 공항에서 김정남을 우연히 만나 명함을 건넸다. 이후 김정남이 안부 메일을 보내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2010년 10월 이후 대화가 재개됐다. 고미 위원은 “초기 메일이 몇 차례 오간 뒤 김정남과의 연락이 두절됐고,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며 “하지만 2010년 6월 중앙일보의 일요판 ‘중앙SUNDAY’가 마카오에서 김정남을 만나 특종을 한 것을 보고 접촉을 다시 시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 공백 때문에 2010년 3월 터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지난해 12월 19일에도 메일을 주고받았다. 김 위원장의 추도식이 끝난 12월 31일엔 “북한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100일 동안은 ‘상중’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뭔가 새로운 (나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내 입장이 불리해진다”며 “이해를 부탁한다. 북한 정권이 나에게 위험을 안겨다 줄 가능성도 있다”고 몸을 사렸다. 하지만 올 1월 3일 메일에선 “37년간 계속된 절대권력을 2년 정도 후계자 교육을 받았을 뿐인 젊은이(김정은)가 어떻게 이어갈지 의문”이라고 강한 톤으로 3대 세습을 비판했다. 불과 사흘 사이에 극과 극을 오가는 심적 동요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정남과 주고받은 e-메일
책으로 펴낸 도쿄신문 기자
“중앙선데이 보고 다시 접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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