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하반기 자금경색 위기감 팽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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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현대사태를 계기로 현대에 보다 가시적인 구조조정을 이행하라고 주문하는 한편 정부에도 은행과 투신사 조기 정상화 등 근본적 금융시장 안정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강도높게 촉구했다.

특히 올 하반기 만기도래하는 회사채가 무려 30조원에 이르는데다 기업어음(CP)잔고도 25조-3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금융시장이 조속히 안정되지 않을 경우 대다수 기업들이 연쇄부도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재계에 확산되고 있다.

30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사태를 포함한 최근 경제위기론의 직접적 원인이 지난해 9월 57조원의 차입금을 가진 대우그룹 붕괴로 전체 금융권에 32조원의 부실이 안겨지면서 촉발된 것으로 보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무보증 회사채 18조6천억원을 보유하고 있던 투신사들과 수익증권 판매 증권사들이 6조원 이상의 손실을 떠안으면서 투신권 부실이 장기화된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태 원인은 현대가 보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아 시장신뢰를 잃은 측면도 크지만 직접적으론 투신권 부실로 인해 현대투신 사태가 발생한 것도 주원인"이라며 "여기서 불안감을 느낀 일부 금융기관들이 현대그룹에 대해 자금회수에 들어가면서 현대사태가 일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번 현대사태의 촉발원인중 하나로 모그룹 계열 금융기관이 2천700억원의 자금을 회수, 다른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대출금 회수에 나서도록 한 점이 지목됐었다.

한 경제전문가도 "현대문제가 대우와 같이 영업상 적자에 따른 유동성 부족 문제와는 성격이 다른 것임에도 금융권이 과거 경험에 의존해 무조건적인 공포심리를 가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투신사의 채권형 수익증권에서 1년간 140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촉발된 수요기반의 붕괴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진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가 정부 주장대로 시장이 납득 할만한 자구안을 내놓더라도 금융시장안정을 기대하기는 금물"이라며 "이미 회사채 시장은 자금조달수단으로서의 기능을상실한 지 오래이며 이같은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구조조정과 경제회복이 저해될 뿐만 아니라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212조원에 이르던 투신권의 공사채형 수익증권 잔액이 대우사태로 인해 지난 8일 현재 87조원으로 급감했으며 기업어음(CP) 만기가 보름이하로 초단기화되는 등 자금의 단기화가 심화되고 장단기 금리격차가 5%에 육박하는 등 자금시장이 왜곡되면서 5대그룹을 제외한 대다수 기업의 차입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A기업의 한 임원은 "재벌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무조건 기업을 몰아치듯이 압박만한다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며 "일단 현대측과 채권단이 밝힌 자구책을 일단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며 정부는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잠시 미뤄서라도 기업의 자금난부터 먼저 살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현대도 현대이지만 지금 시장에 확산되고 있는 경제위기론의 본질을 정부가 외면하면 안될 것"이라며 "투신권의 실상을 투명하게 밝히고 필요한 공적자금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정식으로 국회동의 절차를 받아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말했다.(서울=연합뉴스) 노효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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