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새너제이 진출 '한국 벤처' 현장 르포

중앙일보

입력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잇는 101번 고속도로는 샌타클래라.새너제이 접경지역에서 880, 237번 고속도로와 만난다.

삼각형 모양의 이 지역에는 시스코.인텔.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 인터넷 시대를 상징하는 기업들의 본.지사가 빼곡이 들어차 있다.

하이테크를 무기로 거대한 부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골든 트라이앵글' 로 불리는 이곳에는 한국 기업들도 적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

차세대 인터넷 기술을 연구하는 아이투소프트(http://www.i2soft.net)의 황인갑 부장. 3명의 연구원과 함께 낮에는 연구와 미국 협력업체와의 업무로, 오후 5시면 서울 본사와의 협의로 정신없고 다시 밤늦게까지 연구를 계속한다.

황부장은 "차세대 기술의 개발.상품화를 위해서는 이곳의 앞선 기술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사무실을 냈다" 고 말한다.

같은 건물 내에 사무실을 마련한 국내 최대의 도서관 자료검색 SW 업체인 SA&A의 이영상 사장은 "한국의 20배 규모인 미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고 말한다.

실리콘밸리 드림에 도전하는 이들 기업이 자리잡은 곳은 i-Park. '골든 트라이앵글' 의 심장부에 위치한 정통부 산하 해외 정보통신벤처 지원센터(http://www.ipark-iita.com)다.

지난달 25일 문을 열었으며 총 44개 업체가 들어설 예정. 현재 이들 외에 지오소프트.시큐어소프트 등 20여개 업체가 업무를 시작했고 나머지 업체도 이달 말까지는 모두 입주할 예정이다.

새너제이 중심가의 한 빌딩에는 한국의 또다른 창업지원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창립 2년을 맞는 KSI(http://www.koreansoftware.org)가 그곳. 3R소프트.다산인터넷 등 15개 소프트웨어 회사가 실리콘밸리 신화를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제 막 꿈을 키워가는 이들 기업과 달리 상당한 지위를 굳힌 곳도 있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로 부를 얻고 이젠 유력한 투자기관이 된 이종문 회장의 암벡스 그룹,가격 비교사이트 '마이사이먼' 을 인터넷 미디어 회사인 'C넷' 에 합병시켜 큰 돈을 번 마이클 양씨 등이 대표적이다.

유리시스템.자일랜 등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실리콘밸리는 아니지만 뉴욕에서 기업공개를 눈앞에 둔 '코즈모닷컴' 의 조셉 박씨도 눈에 띈다.

한국.미국에서 모두 인기를 끌고 있는 다이얼패드닷컴도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안현덕 다이얼패드닷컴 사장은 "올해 안에 미국내 회원수를 1천2백만명으로 늘리고 내년 초엔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을 제외하곤 교포 출신들만 고군분투하던 실리콘밸리에 한국 벤처기업들의 도전이 시작된 것은 불과 3~4년 전. 외환위기를 벗어난 지난해 중반부터는 가속도가 붙어 현재 1백여개 남짓의 기업이 꿈을 캐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진출이 곧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5년째 실리콘밸리를 지켜봐 온 KTB네트워크의 윤승용 미주 지사장은 "이곳에서도 일류로 치는 윌슨 앤 손시니의 법률자문, PWC.딜로이트 투시와 같은 일류 컨설턴트, CMGI.ICG 같은 명문 벤처캐피털 겸 지원기관의 투자가를 끌어내면 성공 가도에 진입하는 셈이지만 그러고도 나스닥 상장과 같은 '대박' 이 터질 확률은 1% 남짓에 불과하다" 고 말한다.

KSI에서 일하다 최근 자기 사업을 시작한 알렉스 리씨는 "한.미간의 비즈니스 환경.문화의 차이를 줄이는 게 급선무" 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에서 통한 기술을 그대로 미국에서 고집하고▶의사결정이 더뎌 숨은 비용(비하인드 코스트)이 많으며▶인적 네트워크는커녕 언어소통도 어려운 현실 등이 한국기업의 발목을 잡는다고 덧붙인다.

우리 기업과 달리 인도.중국계는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가 특히 강한 인도계는 90년대 초에 만든 SIPA.TiE 두 조직으로, 대만계가 중심이 된 중국계는 CIE.CASPA를 구심점으로 뭉쳐 있다.

이에 자극받은 교포 사회도 2~3년 전부터 교포 기업인들의 모임인 KASE(http://www.kase.org)를 중심으로 종.횡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이계복 KASE회장은 "매달 한 차례 이상 모임을 갖고 벤처기업 경영에 필요한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조직을 키워나가고 있다" 고 소개했다.

안성진 i-Park 센터장은 "한국인만 한데 모여 소외당하는 '섬' 이 아니라 한국에 뿌리를 둔 '미국' 기업의 양성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며 "입주기업을 보살피는 게 아니라 서로 도움과 이익을 주고 받는 동반자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수년간 축적된 경험은 한국계 기업의 현지 진출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KTB의 윤승용 지사장은 "오랜 벤처기업 전통과 80년대 말의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 그리고 월등한 기술과 인력을 갖춘 실리콘밸리의 노하우를 충분히 익히면 한국계의 실리콘밸리 신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