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2000] 신기술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입력

최근 다녀온 유럽여행 기간 중 도처에서 일본 만화영화 ''포케몬'' 의 캐릭터들을 볼 수 있었다.로마의 스페인광장에서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제임스 딘이나 디카프리오와 같은 유명 배우들의 대형 사진과 함께 포케몬의 주인공인 피카추를 팔고 있었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도 ''포켓 몬스터(포케몬) '' 라는 ''귀신'' 만큼은 아이들에게 건전하다는 관대한 논평을 내놓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파리 시내의 거의 모든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에도 포케몬은 들어있었다.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들이 내가 일본사람인양 포케몬 카드를 흔들어보이는 모습에서 포케몬 열풍의 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서양에서 느끼는 동양문화의 열풍은 서점에서 더욱 강하게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서너군데 둘러본 로마의 서점치고 ''동양 종교'' 코너를 따로 마련해 놓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것도 괜히 격식을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선불교부터 인도의 요가사상에 이르기까지 구색도 골고루 갖췄다.뿐만 아니라 매장의 크기도 본격 철학코너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컸다.

한마디로 유럽에 동양종교 바람이 불고 있다는 말이 실감됐다.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계몽주의 이후 3백~4백년 만에 다시 종교적 심성을 되찾고 있다.

이런 유럽인들에게 마음을 달래주고 자기를 찾는 동양종교가 인기를 끄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이라는 신기술의 신화에 몰입하고 있다.하지만 최근의 MS사에 대한 독점 판결이 잘 보여주듯이 21세기 문화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독과점이다.

특히 기술이 문화와 정신과 결합하지 못하는 경우 이러한 독과점의 폐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우주의 귀신들까지 ''포켓'' 속에 담아내는 편리함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새로운 철학과 문화.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유럽문화의 반기술주의나 종교로의 귀향은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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