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중소기업 ‘퍼스트 무버’ 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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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은 ‘닮았다’. 성공 비결을 취재할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다.

 “연구개발(R&D) 투자만큼은 아끼지 않았다.”(서정진 셀트리온 대표)

 “위기를 기회 삼아 투자를 늘렸다.”(이승규 디에스 대표)

 “해외진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김선권 카페베네 대표)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벤처기업 315곳을 조사해 7일 발표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R&D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은 회사, 해외 진출에 몸을 사리지 않은 회사가 승승장구했다. 최근 3년 연속 매출이 20% 이상 증가한 ‘수퍼 가젤형’ 기업의 연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5.1%로 조사됐다. 대기업(1.5%), 중소기업(0.8%)에 비해 월등했다. 2002년 창립해 7년 만에 ‘매출 1000억 클럽’에 가입한 셀트리온의 지난해 매출 대비 R&D 비중은 44%다.

 지난해 처음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한 디에스·태산LCD도 닮았다. 해외 진출에 적극적이었다. 두 회사는 모든 회사가 움츠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중국에 수백억원을 들여 공장을 추가로 세운 것이다. 2008년 12월 창업해 국내 최대 규모 커피 전문점으로 성장한 ‘토종’ 브랜드 카페베네는 창업 2년이 채 안 된 지난해 10월 미국에 진출했다. 올 하반기엔 중국·싱가포르에 진출한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의 눈은 여전히 멀리 닿지 못하고 있다. 무턱대고 R&D와 인재에 투자하는 데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좁은 내수시장에서만 아웅다웅하는 모습이다.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대기업에 맞서려면 보호막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보호막을 치려고만 하지 말고 깰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매출 1000억, 1조 클럽’ 기업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선 중소기업청장은 최근 “그동안 한국 중소기업은 경쟁사를 재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젠 경쟁사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재빠른 것보다 앞서가는 것, 변화무쌍한 요즘 기업환경 속에서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인 듯싶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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