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은 종북 진보와 달라” 정동영 “취소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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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정동영 최고위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북정책을 놓고 설전을 벌인 뒤 표정이 굳어 있다. [오종택 기자]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이 1일 공개된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당의 대북 정책 기조를 놓고 충돌했다. 나란히 회의장에 앉은 두 사람이 가시 돋친 설전을 벌여 나가자 분위기는 얼어붙었고, 당 관계자들이 “그만하시죠”라며 뜯어말리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손 대표는 6월 28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와의 면담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인내심을 갖고 계속 설득할 필요가 있지만 인권과 핵 미사일 개발 문제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이를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를 문제 삼았다.

 그는 “‘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워딩(표현)”이라며 “민주정부 10년의 햇볕정책에 수정을 가하는 변형된 정책이란 오해를 줄 수 있고, 우리 당 노선과도 상치된다”고 했다. “(손 대표가) KBS 수신료 인상안에 덜컥 합의해 주고,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에 합의해 준 것도 당 정체성에 심대한 위해(危害)를 준 결정이었다. 이런 말씀을 드려 마음이 무겁지만 당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는 말도 했다.

 박 전 대표는 2007년 2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특강에서 “집권하면 ‘원칙 있는 포용정책’을 전개하려 한다”고 했었다. 정 최고위원이 비판 발언을 하는 동안 손 대표는 꼼꼼히 메모했다. 이어 정세균 최고위원 등 참석자들의 나머지 발언이 끝나자 손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손학규=‘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개방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원칙 없는 포용정책’은 ‘종북 진보’란 오해를 살 수 있다. 북의 세습이나 핵 개발을 찬성할 순 없다. (이것이) 김대중 대통령 이래 꾸준히 추진해 온 대북 포용정책이다. 색깔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민주당은 분명 (종북 진보와) 다르다.

 ▶정동영=당 강령에 햇볕정책은 한 자도 수정하지 말라고 돼 있다. 외국 정상에게 우리 당의 노선이 ‘원칙 있는 포용정책’이라고 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동안의 포용정책이 원칙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원칙이 없는 것처럼 종북 진보라고 한 건 취소돼야 한다. 포용정책은 세습체제를 찬양하는 정책이 아니다.

 ▶손학규=‘원칙 있는 포용정책’은 당의 지속적 입장이다.

 ▶정동영=(따지듯) 취소하세요. 어떻게 제 말에 ‘종북 진보’라고 합니까.

 ▶손학규=(짜증 난 목소리로) 그만하시죠. 다음에 하시죠.

 ▶정동영=어디 토론해 보죠.

 여기저기서 말리는 목소리가 나오자 손 대표는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후 더 이상의 설전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손 대표 측근은 “정 최고위원이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꼬투리를 잡고 있다”고 했고, 정 최고위원 측근은 “‘종북 진보’라는 말은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최고위원에 대한 인신공격을 넘어 참여정부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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