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 악동’ 룰즈섹, CIA마저 “탱고 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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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즈섹 로고

하나의 해커집단이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고 있다. ‘룰즈 시큐리티(줄여서 룰즈섹·LulzSec)’라는 이름의 해커집단은 15일(미국 동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 중앙정보국(CIA) 웹사이트를 해킹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후 5시48분 “탱고 다운(Tango down·목표물이 사살됐다는 교전용어)-CIA.gov”란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이후 CIA 사이트는 접속이 불가능해졌고 오후 8시에야 복구됐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CIA 측은 “조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지난달 말 미국 공영방송인 PBS의 사용자 정보를 빼내 주목받기 시작한 룰즈섹은 소니 픽처스와 닌텐도 미국 법인, 연방수사국(FBI) 애틀랜타 지부, 상원 웹사이트에 이어 CIA까지 침입에 성공하며 미 정부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사이버 보안을 무력화시켰다. 영화 ‘다이하드 4.0’처럼 해커가 정부 기간 전산망을 장악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룰즈섹은 현재 “다음 공격 목표물을 제안받겠다”며 직통전화(핫라인)까지 운영하고 있다. “각지에서 초당 5~20명의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고 있다”고 트위터에서 주장했다. 이들이 제시한 번호로 전화를 걸면 “피에르 뒤부아와 프랑수아 드룩스는 인터넷에서 못된 짓을 하느라 전화를 받을 수 없다”고 녹음된 프랑스 억양의 남성 목소리가 흘러나온다고 BBC는 전했다. 이들은 또 “우리는 세계 어디로든 그 전화번호를 보내 줄 수 있다”고 밝혀 엄청난 통화량을 이용한 ‘전화판 디도스(인터넷 분산서비스 거부) 공격’으로 특정 기관의 전화선을 마비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

 룰즈섹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13일 상원 웹사이트를 침입한 직후 “우리는 미국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부의 사이트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소니를 공격한 이유는 소니 측이 플레이스테이션3를 해킹한 유명 해커 조지 호츠를 고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FBI가 소니 해킹 건을 수사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FBI를 공격했다. 룰즈섹은 인터넷 자유에 대한 침해도 공격 이유로 꼽는다. PBS를 공격한 이유는 PBS가 폭로 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를 비판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최근 포브스와의 채팅 인터뷰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해킹한다”고 밝혔다. 룰즈섹 회원들은 FBI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지만 해커들 사이에선 스타로 떠올랐다. 이들이 익명의 지지자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은 7000만 달러(약 760억원)를 훌쩍 넘었다. 거래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트코인이라는 사이버 통화로 후원을 받고 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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